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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Feb 11. 2021

아빠의 여자 친구 (2021.0211)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39화



1. 아빠의 여자 친구 



토요일은 아빠가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인연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공포에 사로잡혔을 때
바로 그 코로나 덕에 두 남녀의 인연이 무르익고 있었으니


평소 여자분의 주말 스케줄은 성당 일로 꽉 차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성당이 폐쇄되자
연애의 기본 조건인 '여유로운 시간'이 보장되었다.


코로나가 퍼질수록 사람이 없는 야외를 찾다 보니
집 근처에서 고작 밥. 차. 밥. 차 하던 관계가
남이섬,
헤이리,
남한 산성,
남산,
안면도 등 원거리를 뛰는 사이가 되었다.


요즘은 코로나가 길어지며 데이트 아이디어가 고갈된 모양이다.

“야... 이제 어~디를 가야 되냐? 이제 갈 데도 없다.”

아빠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나는 아빠의 이런 일련의 노오력이 매우 낯설다.


'아빠.

엄마한테 이런 류의 노력.

한적 없잖아요'






2. 누구.... 세요? 




여자 친구가 생긴 이후로
대게는 금요일에 술 약속을 잡지 않는다.
토요일 데이트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요일도 주로 집에서 쉰다.
그 전날 완전히 에너지를 불태웠기 때문이다.

60대 중반에 하루 종일 운전하며 여행을 다닌다는 건 체력이 꽤나 필요한 일이다.
전국을 휘갈고 다닌 20대 이태원 확진자의 체력과 같을 수 없는데, 마음은 28 청춘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볼일이 있어서 잠깐 아빠 집에 들렀다.

아빠의 얼굴이 무척이나 들떠보였다.
손에는 야자수 무늬가 그려진 반팔 남방이 들려 있었고.

‘오 노~설마 저걸??????????’

발레 파킹 하는 사람들이 단체로 맞춰 입은 옷 같다.

참견하고 만다.

“아빠. 그건 아니야. 그거 입지 마.
그건 바닷가 놀러 갈 때나 입는 거야.”

“그러냐?
이게 낫지?”

하며 옷을 갈아입는다.


그 모습이 또 한 번 낯설다.


나에게 익숙한 아빠의 옷은
추운 겨울 빼놓고 봄, 여름, 가을에
흰색 메리야스에 트렁크 팬티 차림이다.


엄마의 남편인 아빠는
늘 집에서 그렇게 입었었다.


그런데 아빠는 요즘 연애를 하며 옷과 구두를 자꾸만 새로 산다.
엄마가 사준 옷과 구두만 신던 아빠였는데...

점원이 추천했다는 통이 좁은 바지를 입고,
구두나 운동화가 아닌 스니커즈를 신기도 한다.
안경도 금색은 나이 들어 보인다며 다른 색으로 바꿨다.
그 여자분의 추천이란다.


자꾸만 향수를 뿌려댄다.

아주 향을 휘감고 다닌다.
옷마다 베어 들어 세탁을 해도 안 없어질 정도다.

"반만 뿌려. 너무 강해!"
나는 짜증을 낸다.


내가 서른여덟 해를 알았던 아빠는
향수를 가져본 적도 없고
뿌리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말과 행동만 낯선 게 아니라
아빠의 옷과 신발, 체취까지 낯설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집에서 책도 읽고 있다.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전문가가 되고 싶나 보다.


《여자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

이 책이 소파에 놓여 있다.

어떤 남자가 저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면,
나는 그의 진심과 정성에 꽤나 감동했을 거다.
누구든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애쓰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나의 아빠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엄마랑 살 때 좀 읽지?’

내 첫 반응이었다.

괜히 죄도 없는 책을.
지나칠 때마다 흘겨보고 째려봤다.

남동생도 나에게 나직이 속삭인다.

“이제 와서?”

그 순간 우리에게 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구 상에 이렇게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존재가 있다니 

완벽한 공감을 경험한다.







3. 어떻게 내 맘을 표현할까



한 동안 나는 연애하는 아빠를 보며
속이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라면 안 그럴 텐데!’



만약 아빠가 먼저 돌아가셨다면
엄마는 그냥 계속 나의 엄마일 것 같았다.

혹여나 아주 나중에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내 눈치라도 볼 것 같았다.

가뜩이나 나한테는 엄마도 없는데
아빠까지 없어진다.

아빠는 내 눈치 따위는 볼 겨를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든 무너진 삶을 재건하고 싶은 갈망에 눈이 멀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날짜와
아빠가 변해가는 날짜가 무척이나 가깝다는 사실이 원망스럽다.


분했다.

서러웠다.

외로웠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남성 혐오까지 생기려 했다.


아빠의 느낌이고 욕구고 뭐고
알고 싶지도 않고 비난하고만 싶었다.


‘여보세요.
나 좀 봐요.
난 엄마가 죽었다고요.
내가 안 보여요?’


한동안 아빠에게 부탁할 말을 찾아 헤맸다.

비폭력 대화를 배우고 있었기에
내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된 부탁의 말이 뭘까...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아빠. 연애하지 마세요.”



소리 내어 말해본다.
아.... 이건 아닌데.
비폭력대화에서는 긍정문으로 부탁하라고 했는데,


내용도,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아빠의 연애를 원론적으로는 찬성다.
Someday라는 가정 안에서는.
(그 날이 심히 빨리 온 것이 충격이지만)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주는 수많은 장점을 인정한다.
누군가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그 만남에서 소통, 공유, 활기, 인정, 우정, 친밀한 관계 등을 누릴 수 있다면 다행이다. 감사하다.
이것들은 인간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아빠가 다른 관계에서 이런 걸 누린다면
내 마음이 한결 가볍다.

다만,
예상했던 것보다 '누군가의 연인'이 되어가는 아빠는 너무나 낯설다.




다른 말을 찾아 헤맨다.



“아빠. 그 책 읽지 마세요.”


이것도 아데....



지금이라도 아빠가 여성과 소통되는 남성이 되는 게 더 좋다.
아빠가 여성을 더 잘 알게 된다면 여성인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아빠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기를 너무나 강렬히 소망하고 있서 책을 뒤지고 있다.
그 말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그만큼 강렬히 후회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후회가 마음에 든다.

나도 요즘 다르게 살고 싶기로는 두 번째라면 서러운 사람이라 그 갈망이 이해가 된다.

엄마를 통해 인간의 필멸성을 목격하게 된 우리에게는 같은 갈망이 있다.

다만,  '엄마의 남편일 때 진즉 좀 하지!'
원망이 되는 것이다.




그럼 이건가?



“아빠. 너무 빨리 괜찮아지지 마세요.”


그래.. 이 부탁이 실제 내 마음과 가장 가깝다.


그래도 뭔가 아쉽다. 후련하지가 않다.


이건 비폭력대화에서 추천하는 행동 부탁이 아니다.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괜찮아진다'니.  어쩌라는 건가.

게다가 또 한 번, 피하려고 했던 '마세요' 시리즈다.


나는... 그냥 아빠가 좀 더 오래 슬퍼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슬퍼하는 아빠 아래서
좀 더 오래, 아이처럼 안전하게 

엄마의 죽음을 애도으면 좋겠다.

아빠-엄마-나-동생.

영원할 줄 알았던 이 가족상을 아직 좀 더 붙들고 있고 싶다.

'현실 부정'에다가 일종의 '퇴행'인가 보다.






이렇게 부탁의 말을 이리저리 찾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부탁의 말’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방향이 틀리니
찾아질 리가 있나.






4. 금은 애도할 때


지난 달 엄마 생일날 아빠가 놓은 꽃다발



나에게 필요한 건 ‘애도’였다.


'100일 된 아이를 엄마랑 같이 키우려고 친정 단지로 이사 왔다.

갑자기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혼자는 도저히 못살겠다며 새장가를 위해 노력한다.'


이게 나에게 벌어진 일이다.
편하지 않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껴안는 것.
그리고 마음껏 그것을 슬퍼하는 일.


애. 도.

아무리 가족 모두가 필사적으로 노력했어도
엄마는 결국 호흡을 멈췄다.


이제 엄마는 지구 상에는 없다.


내 일상에는 없다.


내 삶에는 없다.


아빠는 간병기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를 되뇌며 자책했고
불면과 우울과 절망의 밤들을 보냈다.

자책은 스스로 한 것으로 충분하다.
아마 아빠는 평생, 자책감과 싸울 것이다.
그러니 나까지 거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엄마와 아빠의 '이 땅에서의 관계'는 끝났다.

지나온 두 분의 부부로서의 삶은 잉꼬부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자식에게 어떻게 보였든
두 분 만이 알 수 있는
연애하고 결혼해서 자식 낳고 아웅다웅 살아낸 몇십 년의 세월이 있다. 

나는 절대로 모를 둘 사이의 관계라는 게 있을 거다.

인정하니 마음이 편하다.




엄마가 투병했던 6개월의 기간 동안
나는 ‘해결할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는 자리'를 지키는 법을 힘겹게 배웠다.
매일매일 포기할 수 없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
변해가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데자뷔처럼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다시 한번
해결할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


내 인생에는 없을 줄 알았던 일이
또 한 번 일어나려 한다.


내 감정이 어떤 것이든 인정해주고받아주려 한다.
내 좌절된 욕구, 쓰라린 마음, 아이처럼 울고 싶은 마음도 쓰다듬어준다.

이것이 나의 최선인 동시에
유일한 생존법이다.

조심스레 숨을 고른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지켜본 나는
사실 어떤 것도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느낀다.

까짓 여자 친구쯤이야.


한편 후련하기도 하다.

엄마의 눈으로 아빠를 보는 일을
예전부터 때려치우고 싶었다.

어린 나에게 엄마가 아빠를 보는 시각은 때로 
고통스러웠고 무겁고 암울했다.
엄마가 울며 내 침대로 왔던 많은 을 기억한다.
그 어깨의 들썩거림. 낮은 흐느낌. 수렁으로 같이 빠져드는 것 같은 끝도 없는 무기력함도 기억한다.


왜 하필 내 침대로 왔을까.
나는 그냥 어린아이였는데.

어린아이에게 기댈 수밖에 없을 만큼
그만큼 그 순간은 필사적이었고 절망적이었을
그 시절의 젊은 엄마를 애도한다.


이제 나는 그냥 나로 살고 싶다.
아빠의 자식으로서도 아니고
엄마의 자식으로서도 아니고.


그간  것인 줄 알고 쓰고 살았던

엄마 안경을

발로 밟아 산산조각 내버리고 싶다.

뭐든지 내 눈으로 똑바로 제대로 보고 싶다.

맨 눈으로 아빠를,
엄마의 남편이 아닌.

한 인간으로 보고 싶다.





‘그래. 이 모든 건 애도할 일이야’

다시 한번 나에게 이야기한다.

후회할 일도
절망할 일도
세상에 저히 어날 수 없는 일도 아닌 것이다.


그저 애도할 일이다.


그리고 나는 애도의 힘을 믿는다.
한바탕 주저앉아 울고 나면, 그만큼 살아지는 묵직한 그 힘을.








덧,

위 글은 작년 6월에 써놨던 글이다.


나의 애도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젯밤 자극이 되는 일이 있었고,
나는 엄마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애도하며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짧지도 길지도 않게 여섯 번을 울었다.


옛날 같았으면 우는 나를 단속하느라
어깨와 눈과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갔을 텐데

애도의 힘을 믿으니
울고 있는데도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편안했다.


"하나님. 죽은 엄마만 불쌍한 것 같아요~"
울먹거리는데,
내가 믿는 신이 1초 만에 내 귀에 속삭여준다.


" 죽은 사람이 뭐가 불쌍하냐!!!!?

어차피 다 죽어!
살아있는데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이 불쌍하지!"





나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 놀라운 진리에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고개가 번쩍 들린다.




마음껏 애도할 수 있는 나는. 
사는 것처럼 살고 있구나!


사는 것처럼 사는 나도.


다 죽을 남들보다 조금 먼저 죽은 엄마도.


불쌍하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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