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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Mar 11. 2021

엄마의 글씨체

1.


아침에 자는 아이를 두고 나갈 때가 있다.
인사도 못하고 나가는 마음이 허해서
글도 모르는 애한테 쪽지를 쓴다.



다행히 비폭력대화를 배운 덕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같은
고전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제한된 공간 안에
시간에 쫓기며 휘리릭 쓰려니
핵심이 나온다.



우리 할머니처럼 하고 있네.

늘 같은 말.


사랑한다는 말이 제일 하고 싶다.


0305 쪽지
0308 쪽지





2.
내 글씨체를 보는데 썩 맘에 들지 않는다.
악필은 면한 정도?

그래도
기계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글씨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어느 하나 똑같은 글씨체가 없다던데.
그래서 글씨는 그 사람이다.  


잘 쓰건 못쓰건
내 아이는 내 글씨체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내가 엄마의 글씨체를 우연히 만날 때마다
울컥 눈물을 쏟아내는 것처럼.
그렇게 글씨체로 나를 추억할 것이다.



3.

며칠 전 서재에서 포스트잇 하나 뜯으려다가
제일 윗 장에 붙어있는 엄마의 글씨와 덜컥 마주쳤다.  

엄마에 대한 애도는 늘
게릴라 전의 성격을 띤다.


24시간 계속 우는 게 아니라
평소에는 일상을 룰루랄라~ 신나게 살다가
헉! 하고 기습당하여 옆구리 어딘가를 깊이 찔리는 느낌이다.


오래도록 포스트잇을 쓰다듬어 본다.

종이에 스쳤을 엄마의 손을 느낀다.

메모를 하고 장을 봐다가

부엌에 오랫동안 서서
한 가정의 삶을 굳세게 일구었을 

엄마의 하루하루를 떠올린다.

그렇게 잘하지 않아도 는데
쓰리 국에 적어도 5찬은 상시 준비되었었던 

엄마의 애씀을 기억한다.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그놈의 밥에서 놓여나서인지
유난히 활기가 돌고 화색이 돌던 엄마의 얼굴도 각난다.




1월 6일 기일.


환갑이 넘으면 놀러 다니려고 들었던 보험금이
'유족 위로금'으로 둔갑하여 나다.


그 돈을 친정 통장에 넣을 때마다

'살아있을 때 엄마에게 식모 두명씩 붙여줄걸'하고  때늦은 상상을 해본다.



아이를 낳고 홈스테이 맘으로 몇 년을 살아봤다.

그놈의 밥걱정이 제일로 징그럽더라.


삼십이 넘어서 애 낳고도

엄마한테 밥상 되돌려줄 생각을 못했던 나를 본다.


늦은 후회를 해본다.



엄마의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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