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상처

by 문객

술잔과 함께 붉은빛으로 변해가는 그녀의 얼굴빛에 익숙하다는 듯 루머와 머루가 방으로 향한다.



"샘님요, 머루 눈 봤어요? 그거 다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요. 지아버지 사업한다고 재산 다 말아먹고 어디 도망가서 행적도 모르고 혼자 살아간다고 애 데리고 다니며 시장에 가 물건 파는데, 갑자기 애 울음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넘어지면서 못에 눈을 찔린 거예요. 그때 큰 병원에서 제대로 수술만 받았어도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참, 인생이라는 게 지지리 복도 없는 것들은 다 그렇게 살라는 건지, 원망도 많이 했소. 그래도 키워보려고 이 학교 저 학교 전학시키며 해봤는데, 지가 애들이 놀린다고 자꾸 결석을 하더라고요. 그러다 살 길이 더 어려워져 결국 부여 지 할아버지 댁으로 보냈는데, 처음에는 잘 댕기는가 싶더니 사춘기가 오더만 또 학교와 담을 쌓더라고요. 갸가 머리 하나는 참 좋은 놈인데, 부모 잘못 만나 인생 한번 꿈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저렇게 방 안에서 책만 읽고 있으니 답답해요."

"네, 어머님"

"그래도 루머가 와서 제가 요즘 참 밝아졌어요. 예전엔 나하고는 거의 말 한마디 않고 지냈는데, 루머가 온 이후론 애가 내 얘기도 듣고 지 말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들어보니, 루머도 사연이 있는 애라, 처음에는 하룻밤 자고 부모님 걱정한 게 내려가라고 하니, 자기는 걱정해 줄 가족이 없으니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재가 뭔 사연이 있구나 싶어 그 이후로 묻지 않았어요. 지들도 그 나이 먹었으면 뭐 다 생각하는 바가 있겠다 싶었어요. 샘님요, 사람 사는 게 참 만만하지 않은 것 같아요. 뜻대로 되나 싶으면 또 어긋나고 잠시 마음의 짐 좀 내려놓은가 싶은면 또 고민이 찾아오고."

"네, 어머님."

"제가 샘님한테 별 얘기를 다 하네요. 샘님요. 피곤하겠네요. 오늘은 여기서 푹 쉬시고, 애들 문제는 내일 가서 애기 하게요. 어혀 건너가 쉬세요."

"네, 어머님도 푹 쉬세요."


아이들의 방으로 건너오자 루머와 머루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온 지 궁금한 듯 방안에 들어오는 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별일 없었다는 듯 그들에게로 향한다. 그들의 이야기와 사연을 접할수록 더욱더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그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에 대해서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루머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어쩌면 본인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발걸음이었을 것이고, 머루와 어머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평가하고 이 길이 잘못되었으니 바로 학교로 가자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기껏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루머를 학교에 데려다 놓고 그의 등교 유무를 체크하는 것 말고 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또다시 그가 학교에 와 아무 말없이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어도 무조건 학교에 데려다 놓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까?


"애들아, 뭐 하고 있었어?"

"엄마랑은 무슨 이야기 나누었어요"

"그냥, 너희들 걱정하는 이야기지 뭐....."

"네"

"루머는 학교 안 다니고 싶어?"

"지금은 굳이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아요. 꼭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할 필요성도 잘 느끼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학교에 가면 너무 답답하고 그래요."

"머루는?"

"저는 루머보다 더 많이 결석한 거 같아요. 나중에 필요하면 검정고시 보려구요."

"애들아, 너희들은 뭐 할 때 가장 행복해?"


"음, 저는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좋아요. 처음에 저는 학교에서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었어요. 답답한 교실 안에서 의미 없이 써진 교과서에 밑줄을 그어가며 몇 문제를 더 맞히기 위해 힘들게 외우고 시험 보는 그런 공부는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선생님 모르게 책을 읽곤 했어요. 책은 교과서 하고 다르게 다양한 교훈과 가르침을 전해줘서 좋아요."

"루머는?"

"저도 머루하고 비슷해요. 책과 음악은 어쩌면 제 삶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호막 같은 것이에요. 책을 읽다 보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위로와 공감을 받기도 하고, 저보다 훨씬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의 열쇠를 찾기도 해요.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너희들이 책을 통해서 이렇게 더 넓고 좋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으니 그것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니? 애들아, 혹시 선생님이랑 여행 가지 않을래?"

"여행이요? 정말요?"

"그래, 선생님도 방학이라 너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꼭 가져보고 싶어서."

"네, 선생님. 좋아요."

"그래, 그럼 내일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선생님이랑 잠시 바람 쐬러 떠나도록 하자. 루머와 머루는 어디 가고 싶어?"

"으음, 저희는 잘 몰라서. 여행을 가본 적이 별로 없어서요."

"바다로 갈까? 동해바다?"

"저희는 어디든 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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