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루야, 머루는 한쪽 눈이 좀 아픈 거 같은데,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세상을 보렴. 누구나 살다 보면 어떤 사고가 생길 수 있고 다칠 수도 있단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외면적인 상처보다 그 상처를 보듬지 못하는 마음의 아픔이야. 할아버지는 우리 머루 눈을 보니, 참 마음이 아프지만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좀 더 당당하게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어. 의학기술이 엄청나게 발전되고 있으니, 머루의 눈도 수술하면 좋아질 수 있을 거야."
"네, 할아버지."
"루머는 꿈이 뭐야? 뭐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할아버지, 왜 선생님이나 어르신들은 학생들을 만나면 늘 꿈만 물어보나요?"
"그러게, 학생이니깐 묻고 싶은 거 아닐까?"
"네, 아직 없어요."
"잘 찾아봐. 루머에게도 멋진 꿈이 있을 거야. 꿈이란 말 그대로 꿈꾸는 것이야. 이루지 못해도 괜찮으니 마음속에 삶을 향한 소중한 보물 같은 거 하나를 담는 거와 같아. 이런 보물이 있는 사람은 눈빛부터가 달라져. 그리고 매일 하루하루가 설렘으로 가득하지. 그런데 꿈이 없는 사람은 마치 떨어진 낙엽처럼 힘없이 축 늘어진 채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돼. 그래서 꿈은 소중한 거야. 이루지 못하더라도 잘 찾아봐. 네 마음속에는 아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소중한 꿈이 반짝이고 있을 거야."
"네, 할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저도 꿈을 갖고 싶지만 그 꿈을 꾸기 전에 부족한 제 현실이 눈에 먼저 선하게 다가와요. 그러면서 제 안에 꿈틀거리는 소중한 꿈을 자꾸만 억압하는 것 같아요."
"그래, 앞으로는 할아버지 말 잘 새겨서 네가 바라는 모든 것을 그 자체로 마음속에 담고 누가 꿈을 물으면 당당하게 이야기하렴."
"네, 할아버지."
"그나저나 많이 피곤할 텐데, 이 늙은이 이야기 듣느라 잠도 못 자고 어서 쉬도록 하자."
"네, 할아버지도 편하게 주무세요."
"그래, 오늘 선생님이랑 너희들을 만나서 이 늙은이가 참 기분이 좋네. 고맙다. 선생님도 고마워요. 선생님도 편하게 쉬어요."
게스트하우스의 밤이 깊어간다.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그의 소리가 들린다. 잠시, 그의 뒤척임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 그가 전해 준 이야기를 하나 둘 새겨보며 걸어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고위직 공무원으로 화려하게 살다가 삶의 바닥에서 바라본 삶 속에는 어쩌면 교과서나 책이 전해주지 못하는 가장 소중한 삶의 가르침이 있었을 것이다. 루머와 머루의 꿈속에 그의 소중한 이야기가 깊은 밤 고운 이야기로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며 잠을 청한다.
문 여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그가 벌써 일어나 말끔하게 단장한 채 배낭을 정리하고 있다. 시간을 보니 아직 새벽녘이다. 그는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루머와 머루는 아직 깊은 잠 속에 있는 듯 숨소리가 고요하다.
"어르신, 벌써 출발하시려고요?"
"가야지, 원래 갈 곳 없는 사람이 분주한 거야. 갈 곳을 찾아야 하니. 애들이랑 즐거운 여행하고, 다음에 인연이 되면 우리 또 만나구려. 애들이 표정을 보니 상처가 있는 듯하던데 잘 토닥거려 주면 애들이라 잘 지낼 거야. 아무튼 함께 해 반가웠구먼. 좋은 선생님 되구려."
"어르신, 식사라도 저희가 대접해드려야 하는데, 너무 빨리 가시는 것 같아요."
"아이고, 식사는 무슨 식사, 식사는 내가 대접해야지.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술 한잔 하면서 또 깊은 이야기 나누게."
"네"
그가 짤막한 인사를 건넨 후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문밖으로 나선다. 그의 뒤를 따라 인사를 전하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핸드폰을 확인해 본다. 머루의 어머니한테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와 있다. 어젯밤 핸드폰을 무음으로 놓아서 그녀의 연락을 확인하지 못했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무슨 전할 말이 있을 것 같아 밖에 나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