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나침반

by 문객

"어머님, 저 루머 담임이에요. 어제 전화가 와 있어서요."

"아, 네, 샘님, 여행은 잘 댕기는가 해서요?"

"네, 어머님, 아이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며 잘 다니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은 어디세요?"

"네, 대구 김광석 거리에 와있어요."

"대구라고요?"

"네, 어머님."

"그럼 이제 대구에서 다른 곳으로 가나요? 아니면, 거기에 며칠 더 머물 예정인가요?"

"아이들하고 상의해봐야 하는데, 아마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아요."

"네"

"어머님, 혹시 머루한테 전할 말이라도 있나요?"

"아니요, 샘님. 경상도 쪽으로 간다고 해서 제가 합천 해인사에 템플스테이를 신청해 놨는데, 거기에 한번 가볼 생각은 없나 해서요? 저도 애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아, 그래요. 저는 괜찮은데, 애들 일어나면 한번 물어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래요, 샘님.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물어보고 연락 한번 줘요."

"네, 어머님."

합천 해인사 템플 스테이, 아주 오래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런데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장소를 선택한 것일까? 혹시 그녀도 그곳으로 내려온다는 말인가? 전화 내용으로 보면 그녀도 템플스테이에 동행한다는 의미로 보이는 것 같은데, 그곳에서 우리에게 말해 줄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루머와 머루가 뒤척이며 일어난다.


"머루야,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어머니께서 우리 여행을 위해 합천 해인사에 템플스테이를 신청해 놨더라고 하는데."

"템플스테이요? 사찰 체험요?"

"아니, 꼭 사찰 체험은 아니고 해인사 숙소에서 하룻밤 자면서 스님들의 일상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야."

"네, 루머는 템플스테이 해본 적 있어?"

"아니요."

"그래, 아마 머루 어머님도 그곳에 내려와 우리와 같이 하룻밤을 보낼 계획 같아."

"네, 그럼 같이 해요. 선생님."

"그래, 그럼 오늘은 여기서 아침 식사를 하고 합천 해인사 쪽으로 가도록 하자."

"머루도 괜찮지?"

"네, 그런데 엄마가 왜 여기까지 오려고 하실까요?"

"그건 있다 엄마 만나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과 함께 합천 해인사로 가기로 했다는 말을 전하고 방천시장 인근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합천 해인사로 향한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 것인지, 우리를 위해 숙소까지 마련한 그녀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선생님, 그런데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요?"

"어딘가 바쁘게 가셔야 하는 것 같더라고."

"네, 그 할아버지 참 멋있는 분 같아요."

"응, 맞아. 다른 할아버지 하고는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아."


대구에서 합천해인사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우리는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면서 합천 해인사로 향한다.


합천 해인사 템플스테이, 몇 년 전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 당시 삶은 선택할 수 없는 방황과 아픔의 연속이었다. 머피의 법칙처럼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터지면서 어딘가로 떠나지 않고서는 일상의 삶을 지속해 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무작정 떠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보고 싶었다. 그때 차를 타고 전국 이곳저곳을 배회하면서 머문다는 곳이 바로 합천 해인사였다. 무작정 떠나왔기에 예약 같은 것은 하지 못했다. 다만 관리소에서 안타까운 사정을 너그럽게 이해해 그날 바로 머물 수 있는 방 한 칸을 내주었다. 아직도 그 깊은 밤, 스님이 전하던 온화한 미소는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 며칠간 그곳에서 머물면서 스님이 전하는 불경 소리와 산사가 전해오는 풍경소리에 취해 심적 안정을 찾으며 다시 일상으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왜 우리를 이곳으로 초대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리조트나 호텔도 아니고 사찰 속에 우리를 불러들인 것은 분명 무언가 전하고 싶은 사연이 있는 것 같다. 해인사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잘 닦인 지방도로를 삼십여분 정도 달리다 보면 보인다. 루머와 머루는 이곳의 풍경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고등학생이라는 나이에 합천 해인사에서 전하는 마음 여행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될지 걱정도 되면서 한편으로 이곳의 풍경이 그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희망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바란다.

해인사 입구 관리사무소에 그녀가 알려준 이름을 말하고 사찰로 향한다. 아직 그녀는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는 해인사 내부의 경내를 잠시 구경하고 이정표가 표시하는 대로 템플스테이가 진행되는 곳으로 향한다. 가야산의 정기가 흐르는 듯 템플스테이 공간은 해인사 맨 위쪽, 가장 풍경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는 작은 방 안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템플스테이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청년이 이름을 말하자 법복 세 개를 내어주면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 지켜야 할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오후 세시부터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간단한 교육이 있을 예정이니 그 교육에 참석해 달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가 내어준 법복을 챙겨 각자의 방으로 향한다. 방안엔 침대, 책상, 옷장이 각각의 공간을 차지한 채 단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책상 위엔 불교와 관련된 몇 권의 책이 꽂혀 있다. 예전에도 왔었지만 참 깨끗하고 편안한 공간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청년이 내어준 법복으로 갈아입고 아이들과 함께 경내를 천천히 돌아보며 해인사의 곳곳을 산책해 본다.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건물도 보인다. 꽤 높은 언덕 위에 바람의 길을 따라 조성된 듯 건물의 모습이 매우 웅장해 보인다. 그리고 꽤 많은 스님들이 끊임없이 경내를 오고 가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듯한 분주한 움직임이 보인다. 가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찰을 구경하며 대웅전 앞을 거닐고 있지만 다른 사찰과 다르게 이곳은 스님들의 움직임이 사찰안을 더욱 가득 채우며 경내의 빛깔과 향기를 채우는 것이 좀 색다르게 다가온다.

경내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교육시간이 다가와 청년이 안내해 준 공간으로 향한다. 한 스무 명 정도의 사람이 템플스테이를 신청한 듯 교육을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나이가 꽤 되어 보이는 중년의 여인들도 있고 젊은 커플도 보인다. 그리고 맨 뒤쪽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자녀와 함께 참여한 가족의 모습도 보인다. 모두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이곳에 온 듯 차분한 자세로 교육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나이가 꽤 지긋한 분이 해인사를 알리는 영상과 함께 등장해 앞으로의 일정과 사찰안의 주의사항 등을 말씀하신다. 사찰은 수행공간이기에 고성방가를 삼가해 주시길 바라며 도량을 거닐 때는 항상 두 손을 모으고 걸으며 도량에서 스님과 마주치면 합장 반배 인사를 해야 함을 주지시켜 준다. 그리고 21시 이후는 사찰의 일정에 따라 취침에 들어가야 함을 강조하면서 사찰 안에 머무는 일정이 모두에게 부처님의 큰 자비 아래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마무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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