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낭독

by 문객

이제부터 저녁 식사까지는 자유시간이다. 그녀의 연락이 아직 오지 않는다. 몇 시 정도 올 것인지 미리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그녀에게서 먼저 전화가 오기를 기다려 본다. 운전 중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기다려본다.

루머와 머루는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잠시 경내를 거닐다 방으로 들어가 여정을 정리하고 휴식을 취한다. 사립문을 타고 밖의 햇살이 방바닥에 문양을 만든다. 어딘지 모르게 그 햇살이 좋아 문을 활짝 열고 방바닥에 누운 채 밖으로 펼쳐진 나무와 하늘을 바라본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구름의 움직임이 마음에 가을바람 같은 여행의 분위기를 심어준다.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왔을 나무의 웅장함에 잎새들이 가냘프게 움직인다.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해본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그녀의 전화다.


"샘님요, 어떻게 도착은 했나요?"

"네, 어머님. 저희는 잘 도착해서 이곳 안내에 따라 교육도 받고 지금은 각자의 방에서 저녁 식사 때까지 쉬고 있습니다."

"그래요, 저도 곧 도착할 거 같아요. 그럼 있다가 만나게요."

"네, 어머님"

그녀도 거의 다 온 것 같다. 저녁 식사 후에는 간단하게 이곳에서 진행되는 저녁 행사에 참여하고 그 이후에 숙소로 가 자유시간을 갖은 다음 취침에 들게 된다. 아직 저녁식사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루머와 머루는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해 그들의 방 안으로 향한다.

"머루야, 뭐 하고 있어?"

"네, 그냥 쉬고 있어요."

"머루야, 어머님도 거의 다 왔다고 하시네."

"네, 선생님 혹시 엄마가 왜 이곳으로 우리를 오라고 했는지 아세요?"

"글쎄, 선생님도 잘 모르겠어."

"그러게요. 왜 하필 해인사일까요?"

"어머님이 자주 다니는 절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너희들에게 좀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잖아."

"그래도 이건 여행은 아닌 것 같은데요. 너무 분위기가 엄숙하고 갈 곳도 없고 구경할 것도 없잖아요."

"그래, 오늘은 그냥 마음 편하게 쉬고 간다고 생각하자."

"네, 선생님."

"루머는 뭐 하니?"

"예, 선생님. 그냥 심심해서 핸드폰 좀 하고 있어요."

"그래, 루머는 좋아하는 게임 있어?"

"아니요. 저는 게임을 잘 못해요. 게임하려면 복잡해서 못하겠어요."

"복잡해? 재미있지 않고?"

"네, 그냥 저는 별로 재미없고, 복잡하기만 하더라고요."

"그래, 그래도 우리 루머는 다른 멋진 취미가 있으니 괜찮을 거야."

"선생님, 불교는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뭐예요?"

"글쎄, 결국은 마음의 평온함 아닐까?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많은 고민과 걱정 등이 생기잖아. 어떤 사람은 그 고민 때문에 너무 힘들어 삶을 그만두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상처 때문에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원망하며 살아가잖아. 선생님 생각에 불교는 이러한 아픔과 상처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그런 종교인 거 같아."

"네, 선생님. 그런데 불교는 너무 어렵기만 한 거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도 이야기해 주셨듯이 인간의 욕구, 욕망이 꼭 부정적인 결과만 나타내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욕망을 비우라고만 하잖아요."

"맞아, 무언가를 바라고 원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더욱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지. 그런데 그 욕망에만 지나치게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오히려 그 욕망의 충족은 더 큰 고통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야."

"네, 선생님. 그래도 불교의 길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맞아, 루머야. 선생님도 가끔 멀리서 이 길을 바라보지만 스님의 길을 간다는 건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일 거야."

거의 다 왔다고 했는데, 아직 그녀의 연락이 오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간다. 루머와 머루가 배고파하는 것 같아,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식당으로 향한다. 스님들과 함께 식당에 가 저녁밥을 먹는다. 사찰안에서는 식당에 들어가면 말을 해서는 안되기에 정숙한 표정으로 밥과 음식을 담고 조용히 자리에 가 밥을 먹는다. 두부조림, 김치, 각종 나물 등이 푸짐하게 차려있다. 밥을 먹는 내내 식당 안은 몇몇의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나르고 치우는 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다. 나이가 지긋하신 스님도 보이고 이제 갓 승려가 된 젊은 스님도 보인다. 가끔씩 고요함을 깨는 인부들의 소리만이 식당 안의 고요함을 깨운다. 루머와 머루도 묵묵하게 밥을 먹는다.


저녁 시간이 끝난 후에는 경내에서 진행되는 저녁예불에 참석해 범종소리도 들어보고 스님이 전하는 반야심경의 불경을 듣는 시간이 있다. 그녀는 아직까지 연락이 오지 않는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밥을 먹은 후 진행되는 행사를 참관하고 반야심경의 불경을 듣기 위해 대웅전으로 향한다.

대웅전엔 몇몇의 사람들이 방석을 펼친 채 불상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닌 우린 그저 한편에 앉아 행사가 진행되기를 기다린다. 잠시 후 승복을 차려입은 스님 한 분이 들어오신다. 스님은 인사를 한 뒤 목탁의 울림을 통해 사찰안의 고요함을 깬 뒤, 그 청명함 속으로 반야심경을 낭송한다. 반야심경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목탁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스님의 불경 소리는 그 자체로 마음의 가락을 안겨주는 고요한 화음처럼 느껴진다. 잠시 스님이 전하는 소리에 취해 눈을 감고 내면의 마음을 바라다본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조금만 참고 있으면 감은 눈 사이로 내면의 마음이 보이게 된다. 때때로 그 마음은 잃어버린 추억을 선물해 주기도 하고 아픈 영혼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 루머와 머루도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마음 여행을 떠난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총 260자로 구성된 반야심경의 울림이 마치 하나의 음표처럼 마음속에 고요한 가락을 만든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잠시 후, 반야심경의 낭독이 끝날 즈음,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와 한편에 서서 우리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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