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해 나를 더럽힐 용기?

엠마의 이야기를 읽고

by His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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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한 남성에게 찾아온 엠마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출처 악은 종종 가장 정상적으로 보인다 - Evil.. : 네이버블로그)


몸에 문신이 가득한 이 남성은 마트에 들어서자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의 팔에 있는 멍을 급히 가리는 엄마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 마디도 없이 남성에게 다가온 아이의 가녀린 손은 그의 가죽 재킷을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아이의 엄마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남성의 외모를 보더니

수군거리고, 카메라를 들어 촬영까지 했습니다.

문신한 남성이 꽤나 수상해 보인 것이겠지요.


주변이 소란한 틈에 엠마는 남성의 주머니에 노트를 집어넣었습니다.

노트에는 분홍색, 유니콘 스티커 그리고 크레용으로 적힌 네 글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우리를 때려요. 도와주세요."


노트에는 또 다른 그림도 있었습니다.

벨트를 들고 있는 남성,

울고 있는 여자와 아이,

그리고 떨리는 글씨.


아이를 데려가려는 엄마의 고함은 분노가 아니라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의 개입이 더 큰 폭력을 불러올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남성은 무릎을 꿇고 아이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말이 없던 아이는 "엠마"라고 대답한 다음 문신한 남성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까지 따라와 줄 수 있어요? 그가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는 급히 아이를 데리고 마트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남성은 경찰에 전화를 걸고 그림자처럼 뒤따라 갔습니다.

집 앞에 도착하자 이내 고함, 파열음,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경찰과 함께 문을 열자 엠마의 그림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남성은 경찰에 연행되었고,

얼마 뒤 아이는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문신한 남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그저 더러운 바이커다.

하지만 한 아이에게 우리는 필요한 전부였다."


얼마 전 읽은 엠마의 이야기가 하루 종일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네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극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양부모에게 잔혹하게 학대당해 먼저 세상을 떠났던 정인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던 터전을 잃고 황량한 땅에 남겨진 팔레스타인의 아이들.

지금도 어딘가에서 들리지 않는 비명으로 도움을 구하는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낸 비극들입니다.


이런 세상의 끔찍한 어른들이 만든 고통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물론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러나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도움을 구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무엇이라도 해야 된다는 마음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함에 괴로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속에서 엠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고통을 위해 대단한 어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저 누군가에겐 약간의 용기와 관심으로 내민 어른의 손이 필요하다고.

나 밖에 모르는 어른이 비정상이지, 겉모습 따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우리 살아가는 세상에 조금 더 좋은 어른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트에서 세일하는 것을 찾느라 아이의 팔에 있는 멍을 볼 수 없던 그런 어른들 말고.

남성의 문신이 이상하다면서도 가까이 가지도 못한 채로 겁에 질려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어른들 말고.

말만 번지르르하고 책임을 지는 법은 배우지 못한 나이 든 사람들 말고.

연약한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또 받는 것이 당연한 그런 어른들 말고요.


'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아픔에 관심을 갖는 그런 어른들이 있길.

'정상'이라는 껍데기에만 집착하지 않고, 책임을 지기 위해 기꺼이 이상해 보일 수 있는 그런 어른들이 있길.

삶의 한 걸음만이라도 타자를 위해 내딛을 수 있는 그런 어른들이 우리네 사는 세상에 있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아마 이런 어른이 되려면 구정물에 손을 담그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라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다면,

조금은 나를 더럽히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요?

그래야 우리네 사는 세상도 조금 더 살만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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