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히테-독일 국민에게 고함

역사, 교육, 철학, 종교라는 소스를 가지고 민족에 대해 논의하는 명강

by 동쌤의 역사이야기

역사 공부를 따로 하면서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책 제목들을 듣게 되었다. 하나같이 다 당시 역사적, 시대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저서들이었고 그만큼 어렵게 느껴졌다. '참 어렵겠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번 읽어보고는 싶다.'라는 생각만 하며 넘겼었다. 그러다 최근 독서를 시작하며 인문학 고전을 읽게 되면서 용기를 내 피히테의 강의를 인쇄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독일이 일시적으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이러한 현실에 대해 독일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피히테의 강의를 인쇄물로 편찬한 것이다. 이 강연을 할 당시 강연장 밖에는 프랑스 군이 무장을 한채 이 강연장을 포위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 자리에 참석한 피히테와 참여자들은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비장함을 갖고 있었을 듯하다.


사실 이 책 초반을 읽을 때는 문장 하나하나를 세네 번씩 반복해서 읽어야 할 정도로 문장이 난해하기도 하고, 문장을 이해해도 문단의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계속해서 다시 읽어야 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읽어나가다 보니 피히테가 주장하는 주제인 '저항'이 무엇인지가 이해가 되었고, 그 뒤부터는 이 글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고, 논리적으로 앞뒤 문맥이 잘 호응되는, 훌륭한 강연을 했다. 는 의미는 아니다. 몇백 년 전의 글이고, 번역된 글이지만 이렇게 많은 외부적 편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대한민국에 사는 내게 '감동'을 주는 글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지배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독일을 무시하는 독일인들과 지식인들, 황후들에 대해서 게르만 족의 역사와 '독일어'를 이용해 그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독일인들의 우수성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현재 독일이 처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국민교육'을 제창하고 있다. 이 점이 참 놀라웠다. 당장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나폴레옹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간섭과 지배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결과가 보이지도 않을 '교육'을 위기의 타개책으로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정말 신선하고 새로웠다. 그리고 그가 강연에서 말한 새로운 '국민교육'의 내용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학생중심 교육'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 다시 한번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소수의 계급만, 옛날이야기와 교훈을 듣는 정도로 실시하는 교육이 아니라 '선한 쾌감을 맛보게 하는' 교육. 이를 위해선 학생이 주도적이고 스스로 사유하게 하고, 스스로 활동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읽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백 년 전 독일 철학자였던 피히테는 당장 눈앞에서 자신의 목숨, 자유, 재산 그 모든 것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독일인들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고 구체적인 교육 방법까지 제시했는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은 어떠한가. 피히테의 말처럼 '굴종의 맛'을 본 자들이 그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위해, 혹은 새로운 시도가 두려워 기존 질서에 따라가는 차원의 단편적인 교육제도, 교육정책, 교육과정으로만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피히테는 분명히 보았다. 독일이 가야 할 교육은 '선한 쾌감을 맛보게 하여 올바르고 정신적인 사유를 하는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그저 학생들의 흥미를 고취시키는 것인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인가, 민주시민을 양성시키는 것인가, 좋은 대학에 가고 취업이 잘되는 과에 진학시키는 것인가.


사실 나는 그동안 교육 문제에 대해서 혼자서 생각을 많이 했었다. 분명히 갈수록 시대는 발전하고, 과학기술은 우리의 삶과 교육 현장을 편리하게 만든다. 메타버스니, 인공지능이니, 온갖 최첨단 과학기술이 교육현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에 걸맞춰 정부도, 교육청도 자신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oo중점학교'를 선정하고, 중점 사업을 실시하고, 천문학적인 금액을 학교단위에 지원한다. 그리고 성과도 분명히 내고 있다. 교사들은 어떤가. 물론 모든 교사가 그렇다고 할 순 없겠지만 뜻이 있는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사유하고 고민하고 노력한다. 방학 때마다 열리는 수십 개, 수백 개의 연수가 그 증거이고, 생활지도, 교과 전문성, 교과 융합 수업, 교육과정 등등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다양하고 세분화된 장르의 교육전문가들과 교육 소스들이 넘쳐나는 것이 그 증거이다. 대한민국 교육은 분명 멈춰있지 않다.


그런데 대한민국 교육은 멈춰있다. 적어도 내게는.

정확히 말하면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움직이기는 하는데 뱅뱅 그 자리를 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주체가 잘못했다, 그 주체의 책임이다라는 차원의 담론이 아니다. 나는 그 원인을 피히테로부터 찾았다.


대한민국 교육은 방향이 없다.


분명히 서류상 명시된 교육목표는 존재한다. 민주시민교육을 양성하고,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고.. 정말 좋은 미사여구들과 말들로 만든 목표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뛰는 내 입장에서는 그저 '죽은 담론'일뿐이다. 오늘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게 절실하게 외쳤던, 하지만 선명하고 분명한 목표가 대한민국 교육에는 없다. 그저 추상적이고,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하지만 어떻게 이루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백년대계'라는 말로 넘어가게 되는, 그런 목표만 있을 뿐이다.


시대가 변하고, 메타버스와 인공지능이 핫하고, 미래 세대에서는 코딩이나 컴퓨터 등과 관련된 지식이 필수적이고, 수학과 과학에 대한 더 심도 깊은 교육이 필요하고.... 수많은 요구들은 항상 교육현장 주변에 존재한다. 어쩌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독일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절실하게 말이다.

그리고 우리 교육은 그들의 요구를 더디지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 한다. 수용함에 있어 교육적 방향, 교육적 논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요구가 얼마나 큰가. 그것이 국익과 사회에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 이것이 교육의 방향을 정하는 주된 원동력이기에 대한민국 교육은 방향성이 없는 것이다.


방향이 없기에 항상 허무하다.

교육 현장에서 자신의 인생과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교사들도, 그 어떤 교육 주체도

그 누구도 열심히 하지 않는 주체는 없다. 최선을 다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 해도 "뭔가 잘못됐다."라는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나는 감히 제안한다. 대한민국 교육이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정하자.

피히테는 강연 후반부에 말한다. "우리는 지금 싫어도 그래야 하는 것, 다시 말해서 독일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정신을 굴복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확고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진지한 태도를 취해야 하며 경솔하게 유희 또는 기분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사유와 행동의 분명한 기준이 되는 확고부동한 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후략)... "


나는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 교육이 그저 차고 넘치는 여러 가지 기술,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만 급급한 '도구로서의 교육'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다양한 요구와 넘치는 기술들을 아우르되 교육의 본질을 잃지 않는 '확고한 정신'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방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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