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0년 늦가을, 교토
1590년 늦가을, 교토
드디어 마침내 날이 정해졌다.
장막이 걷히고 전각의 문이 열렸다.
사절단은 예를 갖추어 나아갔다.
그들이 맞닥뜨린 풍경은 낯설 만큼 성글었다.
탁자 하나, 떡 한 접시, 옹기 사발에 따른 탁한 술.
연회의 기물도, 절차도 없었다.
먼저 술이 돌았다.
한 사발, 두 사발, 세 사발 그렇게 끝이었다.
수작(酬酢_술잔을 교환하는 의식)도,
읍배(揖拜_절하며 인사하는 의식)도 없었다.
공기가 마른나무처럼 삭삭 긁히는 소리가 났다.
그때, 그가 들어왔다.
작고 마른 체구, 검게 그을린 얼굴, 깊이 들어간 눈,
그 속에 그의 안광이 번뜩였다.
흡사 원숭이의 형상이었다.
흑포 차림에 방석을 포개어 앉은 사내,
사절단이 기록에서 ‘수길’이라 적을 그 사람,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그는 사절단을 훑어보더니,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선조의 국서를 받아 들었다.
외국의 사절이 아니라
속국의 신하를 대하듯 무심했다.
잠시 후,
히데요시는 장막 안으로 사라졌다가
편복(간소한 평상복) 차림으로 다시 나왔다.
품에는 그의 어린 아들 츠루마츠가 있었다.
그는 당상을 거닐며 아이를 흔들었다.
“악공을 불러라.”
이윽고 악공들이 불려 올라가
성대히 음악을 연주했다.
북과 피리, 거문고의 선율이 혼재된
이질적인 멜로디가 전각을 채웠다.
그 순간 아이가 옷에 오줌을 지렸다.
히데요시는 껄껄 웃었다.
시녀를 부르니 왜녀가 나와 아이를 받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전각의 사람들은 태연했다.
마치 그 모든 것이 일상적인 의식의 일부인 양.
황윤길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눈에 비친 히데요시는 ‘예를 부정하는 힘’ 그 자체였다.
김성일은 속으로 그의 실체를 가늠해 보려 부단히 애썼다.
‘무례하나, 허세일 수도 있다.
허세와 실력의 경계를 분간해야 한다.’
허성은 붓끝으로 기억을 눌러 적듯
마음속 문장들을 정렬했다.
‘탁자 하나, 떡 한 접시, 탁주, 세 순배, 예 없음..
아이의 오줌까지.
이 모든 장면이 훗날 무슨 의미로 읽힐까.’
세 사람 모두에게
폭풍 같은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회견은 그렇게 끝났다.
사절단이 사례하고 물러난 뒤,
히데요시는 다시 만나주지 않았다.
국서의 답신은 지연되었고,
사절단의 고뇌와 시선만이
두꺼운 장막을 헤집듯 서로 엇갈렸다.
늦은 밤, 객관. 황윤길이 낮게 말했다.
“저 기세라면, 칼을 바다 건너로 밀어 올 생각이 분명하오.”
김성일은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허세로 위세를 과장한 것일 수 있소.
다만 우리 방비를 헤프게 여길 일은 아니오.”
허성은 호롱불 아래에서 기록을 덮었다.
내가 본 모든 무례가 그대로 문장으로 남을 것을 알았다.
누군가는 ‘과장’이라 읽겠지만,
실록에 새겨질 장면은 방금, 분명히 그들의 눈앞에 있었었다.
사절단은 교토의 서늘한 공기를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넉 달의 기다림과 하루의 모욕,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전화(戰火)의 예고가
발걸음에 달라붙었다.
바닷바람이 전각의 등불을 흔들었다.
꺼질 듯 흔들리는 불꽃이
벽에 원숭이처럼 구부정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오늘의 기록 속 표현을 떠올린 누군가가 문득 몸서리를 쳤다.
그 밤, 세 사람은 각자의 상념들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