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행을 했을 때쯤은 성수기(방학) 속의 비성수기였다. 우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날보다 비가 오는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 유일한 신발이었던 스탠 스미스는 마를 날이 없었다. 선물로 받은 그 신발은 하얀색 가죽에, 발바닥 부분이 코르크 재질이었다. 잘 마르지 않는, 그 걷기 불편한 운동화는 동남아로 넘어와서 몇 번이나 애를 먹였다. 꼬질꼬질해지고 사탕을 밟았는지 개미가 꼬이기도 했지만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내 발은 마를 날이 없었다. 양말도 금세 젖어 들어 소용이 없었다. 햇볕에 바짝 말리기에는 해나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맨발로 다녔다. 비가 와서 쓸려나간 아스팔트는 촉촉하고 깨끗했다. 보호되지 않는 발은 안전하진 않았지만 편안했고 다채로웠다. 발바닥에 닿는 촉감들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까슬까슬한 도로, 차 안의 부드러운 카펫, 참방 거리는 물웅덩이는 기분 좋았다. 신발을 한 손에 들고 히치하이킹을 해도 내 맨발에 대해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곳에서는 이방인이라는 내 존재 자체가 더 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신발일랑 아무 상관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그런 나로 있었다. 신발을 신지 않은 여행자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웃음 가득한 여행자로.
그 신발은 한국에 와서까지도 마르지 않았다. 공항 바닥은 깨끗하고 맨질맨질해서 맨발로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서울의 지하철과 버스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은 큰 도시답지 않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쳐다봤다. 어떤 사람은 내게 다가와 아주 용감하다고 했다. 히치하이킹을 하지도 않고, 버스정류장에 앉아있었을 뿐인데. 나는 이 나라에서 이방인이 아닌데, 신발을 신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방인보다 더 이방인이 되었다.
여행은 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여행지에서 나는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분명한 이방자였다.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는 걸, 나도 그 사람들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방인이기 전에 따스함을 가진 사람이니까. 오히려 그 다름에 기대 호의를 받고 새로운 것들을 나누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그 ‘같지 않음’을 감추어두고 싶었다. 다르다고 손가락질받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방인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기 때문이다. 이방인은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이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름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똑같아지지 않아도 된다.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방인을 당연시 여기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또 다른 이방인을 만나기 위해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뿐이다. 당신도 당신만의 이방인으로 남을 수 있기를, 또 다른 이방인을 만나러 여정을 떠날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