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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9. 2017

오리엔트 특급 살인

차가운 소재, 인간적인 이야기

추리소설을 좋아하는지라 여성 추리소설 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도 여러 번 읽어본 기억이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코난 도일의 작품만큼 유명세를 떨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추리소설로는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고전이기도 하다. 명탐정 셜롬 홈즈와 달리 그녀가 만든 캐릭터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는 좀 더 인간미가 있어서 따뜻한 시선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일본 추리소설 작가들이 가장 많이 참고하고 그 흐름을 따라간 작가는 코난 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인지라 범인 이안에 있다는 설정은 진부할 만큼 뻔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게 만드는 매력은 바로 스토리에 있다. 


누군가를 살해했지만 각기 범인에게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은 옳고 그른 잣대로 나눌 수는 없다. 살인이라는 차가운 소재를 따뜻하게 풀어내는 방식의 작품들은 일본 작가들에게서 많이 만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역시 그러한 경우가 많다. 영국의 문화를 사랑하고 그 문학이나 역사적인 것 조차 사랑하는 일본으로서는 그 색채를 닮아가는 것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보면 반전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뿐만이 아니라 인간 성격을 베이스로 하는 갈등 구조가 돋보인다. 차가운 소재를 따뜻하게 풀어내는 그녀의 재능을 만나고 싶은 작가라면 꼭 그녀의 작품을 읽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영화에서는 그녀의 소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개봉 전까지 무척이나 궁금했던 필자는 개봉 당일 영화관을 찾았다. 그녀가 만들어낸 가상 인물 중 사랑받는 대표 탐정인 에르큘 포와로는 사건 의뢰를 받고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초호화 열차인 오리엔트 특급열차에 탑승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영화화했던 이유 때문일지 몰라도 연기력으로만 말하면 손꼽히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케네스 브래너, 페넬로페 크루즈, 웰렘 데포, 주디 덴치, 조니 뎁, 미셀 파이퍼,  데이지 리들리뿐인가. 조연만 보더라도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이들의 연기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그 배역에 충실하게 표현한다. 

일본 작가들이 설정으로 참 좋아하는 밀실 살인 혹은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오리엔트 특급 열차 안에서 벌어진다. 갑자기 내린 폭설로 열차가 멈춰 선 밤, 승객 한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1등급 객실에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13명의 용의자가 있다. 명탐정이라고 칭송(?) 받는 포와로는 현장에 남겨진 단서와 용의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미궁에 빠진 사건 속 진실을 찾기 위한 추리를 시작한다. 포와르를 보면서 탐정이라는 자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게 한다. 한국의 탐정 자격은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것도 그럴 것이 탐정을 하고 싶다는 혹은 사설로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99% 이상이 자격미달이기 때문이다. 


폭넓은 지식과 그 지식에 걸맞은 인성뿐만이 아니라 빠른 판단력과 상황 인지능력을 가진 사람이 탐정이 되어야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탐정의 자격을 논한다면 지금 한국의 형사 수준이 아닌 에르큘 포와르 탐정 정도의 자격이 되어야 할 것이다. 

포와르는 1등급 객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지만 알리바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속에서 혹은 소설 속에서 포아르가 쉴 때 가장 읽고 싶은 소설의 작가는 바로 영국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다. 아마도 찰스 디킨스 사후 20년 후에 태어난 아가사 크리스티는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지금 글을 쓰는 책상 바로 옆에 완역된 찰스 디킨스의 작품 오래된 골동품 상점이라는 책이 있다. 포아르가 좋아할 만큼 찰스 디킨스는 위대한 작가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가 써 내려간 작품에서 만나는 독특한 해학을 만난다면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 중간에 여러 가지 부연 설명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면 살해된 라쳇은 포와르가 처음 만났을 때에도 큰돈을 거부할 만큼 문제가 많아 보이는 남자였던 것 같다. 그러나 포와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악인이라도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이 있었다. 포와르가 사건을 파헤치고 파헤치다 보니 결국 하나의 점으로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바로 모든 용의자가 하나의 연결점으로 모두 이어지고 있었다. 인생을 대충 살아가는 사람은 그냥 대충 살아가면 된다. 그러나 대충 살아가는 사람이 욕심을 가지는 순간 모든 파멸은 예고가 된다. 그 결말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을 뿐이다. 


법이 판단하기에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떤 쪽이든 판단을 내려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의 위에 서 있지도 않지만 법을 지키기 위해 결사적인 노력을 하는 포와르는 자신이 지켜온 신념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옳은 결정일까. 


끔찍한 사건들과 폭력적인 것으로만 영화로 만들어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영화판 속에서 이 영화는 보석 같은 영화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글의 구성력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영화로 만나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한 사람이 일으킨 사건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고 분노와 회한에 젖어서 살게 하는지 다시금 보게 된다. 한 사람의 희생이 이럴진대 수백수천, 수만의 사람들을 희생시켰다면 그 왜곡은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클 것이다. 그런 것은 덮어질 수도 잊힐 수도 없다. 


차가운 소재를 따뜻하면서 감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그 힘... 이 내게 아직 부족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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