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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지구

홍콩 누아르 로맨스의 정석

어떤 사람은 천장지구를 볼 때 누아르라 읽고 어떤 사람은 로맨스라고 읽는다.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천장지구는 현재 나이를 기준으로 3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이니 말이다. 천장지구는 한국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 많은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특히 유덕화가 타고 다니던 일명 날차라고 부르던 스즈키를 비롯하여 가와사키를 한국에 유행시켰다. 당시 이 영화를 보고 마치 자신이 유덕화 인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남자들을 양산해 냈다. 자신들은 낭만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민폐(125cc 불법개조보다 낫긴 했지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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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화를 찍을 당시의 유덕화 야 이미 뜬 배우이니 말할 것도 없지만 젊은 건달의 카리스마가 풀풀 풍기는 매력이 있었다. 건달의 끝은 결국 죽음 아니면 폭망이라는 것을 잘 그렸기에 바람직해 보였다. 돈이라는 가치는 힘들게 벌을수록 커진다. 쉽게 벌면 벌수록 빨리 사라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돈이 란 건 묘한 속성이 있다. 사람이 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을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그 사람을 망가트릴지 아니면 적당하게 유지할지 판단하는 것은 온전히 돈이라는 무생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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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남자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오천련이 맡은 캐릭터였을 수도 있다. 부잣집에 태어나 청순가련하면서도 심지어 착하기까지 하다. 온갖 나쁜 짓을 해도 떠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지만 영화에서나 만족할 수 있는 캐릭터다. 얼굴은 그 정도의 미모를 열 일하지 않기는 하지만 그 연기에 푹 반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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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양아치를 좋아한 부잣집 공주의 스토리라 한국 여자들의 취향에는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여자는 위를 쳐다봐야 하고 신데렐라 스토리가 더 와 닿으니 말이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면서도 조금은 왜곡된 관점으로 이성을 바라본다. 능력 있는 여자들은 능력이 없는 남자들을 만날 바에 차라리 혼자서 사는 것이 맞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외모가 되는가를 재본다. 아니면 어리석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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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조금은 유치한 이야기이지만 당시에는 대단히 많은 인기를 누린 영화다. 홍콩 누아르중 총알이 떨어지지 않는 권총을 쏘는 주윤발을 제외하고 로맨스가 들어가는 홍콩 누아르 영화는 천장지구가 시작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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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지구에서 이 둘의 어울리지 않는 사랑은 짧게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 결국 새드엔딩으로 달려간다. 철없는 나이에 이 영화를 볼 때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조차 의미 있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한 사람이 그 색채가 다채로워지니 말이다. 큰아버지 집의 쪽방 같은 곳에서 비디오테이프로 천장지구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이런 영화평을 쓸 것이라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시간은 지나고 볼일이다.


솔직히 어린 나이라서 그런지 오천련의 여성스러움보다 유덕화의 남성미가 더 와 닿았다. 허세에 대한 매력이 더 컸다고 할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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