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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08. 2018

서해의 일출

장고항에서 만난 매혹적인 겨울

당진에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도가 무려 영하 15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 꼭 일출을 보겠다가 무작정 당진의 왜목항으로 발걸음을 했다. 왜목항에서 바라보면 장고항의 두 섬이 마치 태양이 뜨는 곳처럼 보이는데 그 광경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한다. 극적인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365일 매일 해는 뜰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1월 1일이나 설날에는 왜 뜨는 해를 보려고 가는 것일까. 

그다지 넓지 않은 대한민국이기에 멀지 않은 곳이지만 동해에서 만날 수 있는 일출을 서해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 당진에 있다. 왜목항과 장고항은 툭 튀어나와 있어서 일출이나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누군가와 함께 일출을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윽고 저 멀리 당진에 있는 발전소에서는 자욱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전력을 만들기 위해 열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하 15도의 온도에도 나와 차를 몰고 왜목향으로 향했다. 당진에서 유명한 마을이 있는 왜목마을은 당진을 소개하는 책자에서도 빠지지 않는 곳이다. 이렇게 이른 새벽의 왜목 마을의 낯선 풍경은 처음 보는 것이서 그런지 기분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이른 새벽 해가 뜨는 시간인 7시 20분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오래간만에 아침밥을 챙겨 먹을지 고민하면서 아직 환하게 빛나고 있는 달을 쳐다본다. 이곳저곳을 매달 바쁘게 돌아다니지만 이른 아침에 일출을 보러 와서야 깨닫게 된다. 내가 찾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차로 갈 수 있는 곳 중에 왜목항은 서쪽에서의 끝자락에 있다. 

왜목항에서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해가 뜨지 않았다. 저 멀리에 있는 안개 같은 것이 일출을 방해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였다.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던지 장고항으로 가서 일출을 보는 것이다. 차를 타고 고요와 정적을 느끼면서 해변 도로를 달렸다.

날이 얼마나 추운지 육지와 가까운 곳의 얕은 바다는 온통 얼어 있었다. 얼어서 그런지 몰라도 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얼음이 갈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런 바다에는 겨울색이 넘치는 음악이 듣고 싶어 진다. 바이올린  연주가인 린지 스털링 (lindsey stirling)의 Love's Just a feeling은 이 분위기에 딱 좋은 음악이다.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이곳 낯선 땅에서 익숙한 음악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게 북유럽에 있다고 거짓말을 해볼까. 믿을지도 모른다. 꽤나 넓은 바다가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다. 사진을 찍겠다고 조금 돌아다니니 손이 얼기 시작한다. 카메라로도 찍고 스마트폰으로도 따로 찍는다. 카메라에는 와이파이가 없어서 바로 보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실치와 낚시로 유명한 장고항으로 오니 마침 해가 뜨는 것이 보인다. 멀리 공기에 반사된 부유물질 때문에 붉은빛을 내면서 뜨는 태양을 정말 오래간만에 본다. 이걸 보려고 이곳까지 온 것까지는 좋은데 얼어 죽을 것 같다. 여기 오니 더 추워지는 것이 바닷바람이 여간 매서운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있어 본다. 설마 얼어 죽기야 하겠는가. 

정박해 있는 어선 위로 날아가는 갈매기는 춥지도 않은 모양이다. 아니 추워서 이곳을 계속 뱅글뱅글 돌면서 몸에 열을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갈매기가 카메라 앞을 계속 원을 그리듯이 그리며 날고 있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건가. 아니면 이 추운 날 일출을 찍겠다고 나온 내가 이상해 보여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저 태양이 없었다면 장고항의 아침은 무표정한 회색빛과 푸른 바다가 시려서 하얀색으로 변한 것만 보고 가게 될 것이었다. 이렇게 해가 뜨고 춥지만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태양에게서 받은 지구는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지구의 작은 나라에 사는 나도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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