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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급 기밀

군인 정신이 있는 사람이 몇일까?

공식적으로 보관이 되어야 하고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할 일급 기밀은 한국에서 누군가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사용된다. 최근 수자원 공사의 자료 파기에서부터 기무사와 국가의 이익을 위해 뛰어야 할 국정원은 특정 누군가를 위해 뛰는 대신에 콩고물을 받아먹는다. 과연 일급 기밀은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일까. 자신들의 소소한 이득이 국가의 이득이라 외치며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불의는 정의로 둔갑한다.


영화 일급 기밀은 1997년 국방부 조달본부 박모 군무원이 수입 항공기 부품의 고가 납품 비리를 폭로했다가 각종 불이익을 받고 조달본부를 사퇴한 사건과 2002년 공군 항공사업단 조주형 대령이 수조 원대의 차세대 전투기 도입 과정의 의혹을 제기했다가 군사기밀 누설죄로 유죄를 확정, 2009년 계룡대 근무지원단 김영소 소령이 조직적인 군납비리를 고발했다가 타부대로 전출된 후 전역한 사건 등을 극화해서 만들었다. 영화의 완성도가 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많은 관객들이 보지 못하고 극장에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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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을 가진 박대익 중령은 제대로 된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군인 그 자체다. 국방부 군수본부 항공부품 구매과 과장(본부에서 과장은 보통 중령이나 대령을 보직을 받음)으로 부임한 그는 동기인 남선호 대령과 함께 군수본부 부장(본부에서 부장은 별 하나인 준장이 보직)을 모시며 업무를 이끌어 간다. 그러나 그가 있는 팀은 무언가 수상했다. 처음부터 콩고물에 집착하는 것을 비롯하여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가족문화를 강조하면서 업무는 대충, 비리는 듬뿍, 국민 세금은 그냥 줄줄이 흘려버리자라는 마인드로 일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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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재벌이나 정치인, 기득권자들의 자식들은 희한하게 몸이 약하니 제외)라면 보통 군대를 가니 군대문화가 그다지 군인정신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 별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에 끈이 닿아야 한다. 그리고 별 네 개를 달려면 국회의원들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그들과 끊임없는 관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언론을 잘 활용한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는 언론과 함께 가는 것은 그들에게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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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연금도 일부 손을 봤지만 군인연금은 아직도 손보지 못한 데에는 군대 조직의 뿌리 깊은 저력(?)때문이다. 그만큼 군대 조직이 바뀌기 힘든 토양에서 굳건하게 그 뿌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개 중령 따위가 조종사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부품의 문제도 잡고 나아가서는 줄줄 새는 국민의 세금을 줄일 수 있을까. 무언가 부풀려서 돈을 산정한다는 것은 누군가 중간에서 착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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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언론을 비롯하여 국방부의 고위장성들에게 끈이 닿아 있는 천장군을 상대하는 것은 박대익 중령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철저히 깨지고 인사발령과 불이익을 받으면서 곪은 상처를 외면할 박대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로 대한민국 군대를 바꾼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 대한민국 남자들까지 포함한다면 단일 부처로 최대의 조직이며 예산 또한 가장 많이 가져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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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도 많지 않은 영화를 위해 출연한 이름 있는 배우들 덕분에 이 영화는 완성도 있게 마무리가 되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극도로 적은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 나에게 이득이 된다면 한 번쯤 눈을 감을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은 더 쉽다. 세 번 이상이 되면 그것은 자신의 권리가 된다. 그러나 불이익을 받을지언정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탁월한 능력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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