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영국의 남부 해안 도시인 포츠머스에서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빚을 지고 감옥에 간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 공장에서 노동을 하기도 하는 등 힘든 유년기를 보낸 작가가 찰스 디킨스다. 찰스 디킨스는 여러 작품을 썼지만 그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스크루지가 등장하는 크리스마스의 캐럴이다. 돈 때문에 힘들어하며 작품을 써야 했던 찰스 디킨스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필자 역시 캐릭터 만들기를 시도하려 하고 있다. 살아 있는 캐릭터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독자들이 읽었을 때 아! 이런 사람이라면 아니 이런 놈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인물로 창조되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의 아버지는 무능력했지만 노력을 했던 사람이다. 자신이 못해준 것에 대해 항상 미안해하고 죄스러워했다. 그런 아버지를 찰스 디킨스는 못마땅해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만의 서재가 있다. 서재에는 자신만의 지식공간이 존재한다. 마치 머릿속에 서재를 만들어 놓듯이 그런 유일한 자신만의 공간이며 창작의 고통이 있는 곳이다.
찰스 디킨스는 스크루지라는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 영화 속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의 캐릭터들이 살아서 찰스 디킨스를 괴롭힌다. 그리고 비웃기도 하고 주변에 앉아서 창조해낸 그 모습 그대로 그를 꼬집는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예민할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 그 세상이 그려지기 시작하면 현실은 보이지 않거나 거의 무관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찰스 디킨스 역시 그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작업할 때는 무척이나 까탈스러웠다.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를 생각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필자는 글을 쓸 때 현실과 타협하는 스타일이지만 소설을 써야 할 때는 그것이 쉽지 않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세상을 상상하고 관계를 유추하고 캐릭터들에게 삶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편은 여리지만 한 편은 캐릭터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이 때론 냉정해 보일 수 있다. 초등학교(다닐 때는 국민학교였지만) 때 읽어본 올리버 트위스트의 삶은 그가 경험한 것과 용돈을 벌기 위해 몰래 전선을 녹여 팔던 필자의 경험과 맞닿아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찰스 디킨스 역시 정상의 삶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평탄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많은 역경을 겪었다. 작가에게 정상적인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영감을 얻으면서도 경제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준일지 모른다. 글 쓰는 사람으로 자존심보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것이 있을 때가 온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길을 걷지 않듯 작가들도 역시 똑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평범 이상의 탁월함을 꿈꾸려면 간절해야 가능하다. - 나는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