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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사랑

ただ 최근 수많은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내면을 겪어야 한다. 나라를 알고 싶기 위해서는 역사와 언어를 알아야 하고 지역을 알기 위해서는 그 지역을 직접 보고 겪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생각을 관점을 알 수 있는 때가 온다. 이유도 없이 싫다는 말은 나는 노력하고 싶지 않아라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세상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영어는 노멀 하며 일본어는 정중하며 스페인어는 열정적이며 독어는 자로 잰듯하며 러시아어는 까칠하고 불어는 그냥 잘 안 맞고 중국어는 리드미컬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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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을 무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아니 딱히 의미 없다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지우는 이상한 기능이 있다. 아마도 영업자로서의 능력은 실격일 것이다. 필자에게 무엇을 기억하고 메모리(머릿속에서는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르지만)의 일부를 상시적으로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다. 보통은 다른 것을 하기 위해 싹 지워버리는 뇌의 편리한 기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소년 타키는 도쿄에 살고 소녀 미츠하는 시골 이토 모리라는 곳에 산다. 왜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는 보통 남자들이 우월한(?) 위치에 설정되는가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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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주기는 물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지만 천년은 없는 걸로 아는데...)만에 돌아오는 혜성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는 너의 이름은 서로에게 벌어지는 간극을 메우기 위한 분투기에 가깝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떨어졌다가 붙었다가 하면서 간극이 발생한다. 그 간극은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채우기는 무척 힘들다.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한 타키와 미츠하의 노력이 가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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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우연하게 만난 영화지만 필자가 생각했던 콘셉트와 겹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살짝은 조심스러웠다. 영화가 개봉하기 훨씬 전에 생각했던 내용이 지금에서 기시감이 들면 안 되니 말이다. 이 영화의 영상감만큼은 상당히 훌륭한 편이다. 사람이 망각한다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훌륭한 메커니즘이다. 사색의 동물인 인간이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저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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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간극을 메우고 어떤 의미에서는 비극을 막기 위한 이들의 메시지는 사랑이다. 사랑은 서로의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해간다. 서로를 믿고 성장해가고 때로는 끌어주고 때로는 기대는 관계를 통해 주변의 모든 것도 변화시킬 수 있다. 아직 정신적으로 많이 덜 성장했기에 많은 것이 필요한 머리 큰 아이는 오늘도 무언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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