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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5. 2018

통영의 맛

대보름날 거닐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수식어구가 붙어 있는 도시이며 제주도를 가지 않아도 이국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도시는 바로 통영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동안 통영에 몇 번 왔지만 이곳에서 자고 가본 기억이 한 번도 없었다. 오래간만에 들러본 통영에 우연하게도 대보름이 왔을 때였다. 어릴 때 음력 정월 1월 15일에 꼭 같이 모여서 부럼도 깨고 그랬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기억이 점차 가물가물해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통영은 정월대보름이 더 의미가 크다고 한다. 한 해의 첫 보름날이면서 한해의 농사가 잘되고 못됨을 점치고 개인의 운수를 점친다. 부럼을 까먹고 껍데기를 버리면 1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전해오는 날 즐거운 놀이보다는 통영의 밤거리를 배회해보기로 했다. 

묵었던 곳은 이순신의 삼도수군 통제영이 있던 곳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곳곳에 이순신과 관련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이순신을 기릴 수 있는 뜻깊은 공간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저렇게 전투를 하지 않겠지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전투를 했던 당시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이순신과 당시 함께 목숨을 걸며 싸웠던 사람들의 얼굴이 잘 표현되었다. 

정월대보름달이 환하게 뜨고 있고 재현된 거북선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보니 이순신의 한산도가가 생각난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

남의 애를 끊나니

이곳에는 각종 조형물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곳 부근은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이 있는 곳으로 근처에 통영에서 유명한 꿀빵을 비롯하여 통영의 맛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다. 특히 통영에서 유명한 술집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좋다. 

잔잔한 바다 위에서 하늘하늘 거리는 조명은 여수의 밤바다와 느낌이 다르다. 여수의 밤바다가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진 느낌이라면 통영의 밤바다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느낌이다. 거북선을 타고 과거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맞서서 나갔던 이순신과 공감대를 형성해보고 싶다. 

아직 추위가 물러가지 않아서 그런지 옷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꽤나 매섭다. 통영의 밤거리를 거닐다가 길가에서 만난 한 음식점에서 통영의 맛을 느껴보기로 했다. 우선 이곳은 숭늉이 물로 나오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따뜻한 숭늉 한 그릇에 피부까지 얼어 있는 추위가 사라지는 것 같다. 

이렇게 푸짐하게 나오는 해물뚝배기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것도 통영의 매력이다. 갑자기 배가 무척이나 고파진다. 무한 식욕이 돋는 느낌이다. 밥을 두 공기가 해치우고 음식을 두 개 주문해 본다. 

역시 통영은 남쪽의 끝자락이어서 그런지 도다리 쑥국이 일찍 등장했다. 봄 대표음식인 도다리 쑥국은 봄의 전령사인 쑥과 바다 생선인 도다리가 만나 만드는 맛으로 일상의 맛처럼 보이지만 봄의 전령사가 안에 숨어 있다. 쑥은 대단한 식물이다. 단군을 낳은 어머니 곰이 이 쑥을 먹고 인간이 될 정도이니 말이다. 필자 역시 이 쑥을 먹었으니 뭐라도 될 수 있을까. 신화를 창조한 고대인들은 곰이 쑥을 매개물로 삼아 야성을 버리고 인성을 찾았다고 한다. 한해의 첫 보름을 맞이하고 봄의 대표 음식인 도다리 쑥국을 먹으니 힘이 절로 나는 것 같다. 역시 통영은 매력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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