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것 같지만 뻔하지 않는 내용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2개월 만에 접해보는 것 같다. 역시 대중교통은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시간을 만들어준다. 부산에 갈 일이 있어서 KTX를 이용하여 가는 도중에 책을 한 권 읽었다. 370여 페이지에 달하지만 오가는 시간 동안 충분히 모두 읽을만한 정도로 그다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근에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쓰는 요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몸의 전체적인 감각이 묘해졌다. 그냥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고통(?)과 함께 생각지 못한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글도 비슷하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은 뇌 속에 있는 근육이라는 시냅스를 다양하게 이동하게 만들어준다.
"난 인생에서 져본 적 없어, 설령 범죄라 해도."
소설을 안 읽은 것이 한 달이 조금 넘었나. 점차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이었나를 잊어버리고 그냥 생계형 글쓰기만을 하고 있은 때 신선한 감각을 부여해주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술술 풀어가는 필력은 고개를 끄덕일만했다. 어릴 때의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나름 승승장구했던 사쿠마는 의외의 비중 있는 책임자인 부사장 가쓰라기 가쓰토시를 만나면서 자신의 꿈이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된다.
게임의 이름은 유죄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가질 때쯤 의외의 여자가 사쿠마의 앞에 등장한다. 자신의 이름이 가쓰라기 주리라고 밝힌 그녀는 20살이나 되었을까. 그는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까. 그녀에게 의외의 제안을 하게 된다. 바로 가장 유괴극을 꾸미자는 것이었다. 그녀 역시 그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한다. 재벌가의 자식들이 부모를 골탕 먹일 목적으로 가장 유괴극을 꾸미는 경우는 많지는 않지만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사쿠마와 주리는 나름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를 압박해 간다. 과연 이 유괴극은 성공으로 끝날 수 있을까.
소설은 영화화가 되었지만 한국인들은 많이 알지 못한다. 여자를 만날 능력은 있지만 절대 결혼하고 싶지 않은 남자와 재벌의 딸과의 만남은 조금 흥미롭기는 했다. 적극적으로 유괴사건에 가담하는 그녀는 모든 이유가 타당했다. 그러나 이 모든 역할극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었다.
"당신 계략도 멋졌습니다. 따님의 명연기가 받쳐줬기 때문이지만, 제약이 많은 가운데서 용케 그만한 복선을 깔고 미리 손을 써두다니, 감탄했습니다."
"뭐 그렇지만 자네가 그렇게까지 무능하지는 않았어. 사건의 진상을 기록한 텍스트가 들어 있었던 건 예상대 로지만, 다른 데이터가 하나 더 있었지. 그걸 보고는 나도 깜짝 놀랐네. 혀를 내둘렀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려나?"
역시 글을 쓰는 것은 소설이 재미있다. 그것도 추리 스릴러가 가장 어렵지만 재미있다. 어디까지 오픈할 것인지 그리고 이 복선을 어떻게 심어두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되는데 여기에 사람의 복잡해 보이는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선과 악의 경계선이 애매 해질 때가 참 많다. 누군가는 명확하다고 하지만 절대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가 없다.
현실 속에서 글을 쓸 때 가장 힘이 되는 이성이 있지만 글과 작품으로 필자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은 히가시노 게이고 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