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찾고 싶은 것을 찾으세요.
彼女の人生は間違いじゃない
부모로서 최악인 사람들은 있다. 자격이 없지만 어쩌다 보니 부모가 되었고 부모 노릇을 하는 것이 잘못된 방향이지만 그렇게 자식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와 상처를 남긴다. 하나도 배울 것이 없는 무기력한 부모나 자식을 소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폭력적인 부모들 말이다. 많은 경우가 아빠 쪽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노력하는 자식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일본 영화 그녀의 인생은 잘못이 없어는 그런 사람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지 못 사는 것인지를 누가 단정 내릴 수 있을까. 적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도 나를 찾는다면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속 주인공 미유키는 무기력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살아간다. 아버지에게는 영어 학원을 다니기 위해 도쿄로 간다고 하지만 사실 몰래 콜걸로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특히 일본은 빠칭코에 빠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즘처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2011년 쓰나미로 어머니와 집을 잃은 평범한 사무원 미유키는 유사 성매매를 하며 희망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원전사고로 인해 후쿠시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매일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술에 빠칭고에 빠진 아버지로 인해 가정은 무너져 내린다. 오늘도 누군가와 이야기했지만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휩쓸려 감각이나 감정을 모두 잃어버리면 그건 슬픔이 아니라 그 무엇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오늘 누군가와 상실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눈 것이 기억이 난다.
매일 같이 일어나서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그냥 살아가고 숨 쉬는 것 자체가 힘들 때가 있다. 안에 쌓인 아픔은 토해내지 않으면 아물지 않는다. 섣불리 힘내자고 말할 수 없을 때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슬픔에 마주하게끔 해주는 것이다. 필자 역시 아직도 내면의 슬픔을 제대로 마주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냥 나아갈 뿐이다. 멈추어서면 그 슬픔이 나를 따라잡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잘못은 없다. 그냥 사는 것 그것만으로 고마운 것이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절망과 좌절 속에서 희망이라는 것은 어디엔가에는 있다. 우리 삶은 그리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희한하게 깊은 슬픔은 꼬리가 무척이나 길다. 잊었다고 생각하면 다시 생각나고 생각하지 말아야지 생각할수록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자신을 지켜봐 주지 않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이제 곧 도쿄를 가게 되겠지만 그녀가 매일같이 갔던 시부야의 번화가 거리를 거니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직 글 쓰는 사람으로 팩트를 기반으로 감성을 넣어서 길지 않은 호흡으로 쓰는 것은 익숙하고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지만 긴 호흡의 소설은 무언가 부족하다. 사람이라면 마주해야 할 내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필자 역시 가장 찾고 싶은 것은 '나'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