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엔의 사랑

누구나 인생의 링에 선다.

일 엔의 가치조차 쉽게 생각하지 않는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한국은 동전의 크기가 바뀌고 나서 십원은 그냥 떨어져도 줍지 않는 그런 돈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마트뿐만이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십원을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심지어 100원짜리도 거의 쓰지 않도록 배려(?) 하기 위해 500원, 1,000원 단위로 잘라서 제품을 내놓는다. 백 엔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될까. 한국 돈으로 1,000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한 끼의 식사라도 하려면 1,000엔 지폐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편의점에 가면 100엔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다.


일본에 가면 모두 깔끔하고 잘 살 것 같지만 한국의 미래를 보듯이 일본도 우울한 삶을 사는 젊은 사람들이 많음을 보게 된다. 필자가 묵었던 숙소에서 일하는 젊은 일본 남자는 결혼도 연애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서른두 살의 이치코는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일해본 적이 없이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연애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 언니가 못마땅한 동생과 매일 싸우며 살다가 이치코는 홧김에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백엔샵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데 그곳에는 44살의 변태 이혼남,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을 훔쳐가는 이상한 노숙자, 바나나만 사가는 37살의 퇴물 복서가 있다.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시간당 1,200엔을 주기 때문이다.


27e3aaa254a4bcc21e6b6284278f4cb8896b6b38.jpg

일명 루저라고 불리는 그녀에게 미래는 없어 보인다.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좋아하는 퇴물 복서에게도 미래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즉 해결방법이 없는 인생 둘이 만났다. 성인이 되면 누구나 자신만의 링에 올라가야 하는 때가 온다. 미룰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수건을 던지든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패배를 하던지 간에 그리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081c3e0b3c9e5c111ca8b5cd1d557b41ac397cb0.jpg

사회라는 사각 링에 어렵게 나선 그녀는 권투를 시작한다. 그리고 인생에서 조금씩 욕심을 내기 시작한다. 잘살아보고 싶다는 그런 욕심 말이다. 잘살고 싶다는 욕심은 탐욕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의 색깔을 다채롭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아름다운 욕심이다. 밑바닥 인생에서 그녀는 조금씩 정상궤도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고 실제 사각의 링에 올라서는 데 성공한다.

243BB74F545B7A090F.jpg

그녀가 권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사각의 링에 올라선 선수들은 서로에게 원한이 있어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링에 올라선 상대방을 응원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다. 사람들은 스스로와 경쟁할 생각을 하지 않고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려고 한다. 이 노래의 OST로 사용된 <백팔 엔의 사랑(百八円の恋)>으로 ‘아파, 아파 아파…’하며 시작한다.


‘100엔의 사랑에 8엔의 세금, 눈물 따윈 방해만 되고, 왜 어째서 잘 풀리지 않는 걸까?'

0b5882ee5b693c81057faf54f57432b256015046.jpg

아무것도 사랑해보지 못한 삶에 44살의 무기력한 돌싱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심지어는 퇴물 복서에게 버림까지 받는다. 백 엔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던 그녀의 삶은 서서히 복싱이라는 것을 통해 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키우기 시작한다. 일단 그것으로 오늘을 살아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무력감과 무료함으로 가득했던 전반의 분위기에서 스스로를 받아들여가며 성장해가는 조금은 늙은 청년의 이야기가 백 엔의 사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스피닝 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