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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6. 2018

본능에 관한 사유

땅, 담벼락, 눈 살갗에 그리다.

고암 이응노는 홍성과 대전에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국내 미술가중에서 정권에 의해 한국에 오래도록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예술적인 흔적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런 이응노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은 이응노 오마주 '대전미술의 초심적 본능에 관한 사유'전이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렸다. 프랑스어로 오마주는 '존경'을 뜻하며 영상예술 등에서 특정 작품의 대사나 장면 등을 차용해 해당 작가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도 한다. 


대전 미술사에 있어서 고암 이응노의 영향이 컸는데 그의 작품은 이응노 미술관에서 항상 만나볼 수 있다. 이응노는 살아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그런 나를 도와주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나를 방해하려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했지만... 또 그렸다. 땅위에, 담벼락에, 눈 위에 검게 그을린 내 살갗에...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로 혹은 조약돌로... 그러면서 나는 외로움을 잊었다."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꼭 화폭에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맨땅에 그리기도 하고 금방 사라져 버리는 물 위에 그려도 되고 때론 함박눈이 내린 날 눈 위에 그려도 좋다. 그림 그리는 것은 자신과의 소통방식 중 하나다. 단순해 보이는 기법 혹은 색감이 살아 있는 포스터의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삶이 무겁다고 생각하면 무거워지고 가볍다고 생각하면 가벼워진다.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평범한 풍경 속에 의미를 찾아도 좋고 존재감의 가벼움을 인식해도 좋다. 

역사가 짧아 학문적으로 척박하고 그 깊이가 얕았던 대전은 예술에서도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섯 명의 작가들이 고암 이응노 선생이 이야기한 초심적 본능의 미학을 토대로 작품 활동을 하며 예술의 시원적 사유와 경계를 그리고자 했다고 한다. 공간이 발달하고 집이 생겨나면 지역과 사람, 사람과 사람 등 자신이 몸 담고 살아가고 있는 장소에 대한 영감이 생겨난다. 

예측이 불가할 정도로 많은 기술이 나오고 그 기술에 기반한 폰들이 생산되고 있다. 이 작품은 복기형의 작품으로 덜 일하는 것이 사물 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는 노자가 말했던 무위의 중요성을 따라간 듯 보인다. "하지 않으나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집 같아 보이지만 집 같지 않고 창문 같아 보이지만 창문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공간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선으로 실로 조금씩 연결성이 있다. 

삭막해 보이며 멋진 풍광은 아니지만 낡고 퇴락해가는 장소와 황량하게 남아있는 사물들을 찍었다. 사진에서 작가가 의도했던 것처럼 상실과 연민의 시선을 이끌어 낸다. 쇠락해가는 공허한 장소에서 소멸해가는 소소한 사물들은 예전에는 시각적인 의미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전국을 다니다가 보면 이런 풍광을 만들어내는 곳이 적지 않다. 학생들이 줄고 폐교가 되고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서 이런 풍광을 만들어내는 학교들이 많다. 간혹 리모델링이나 작은 도서관 같은 것으로 변신도 하지만 아직도 전국에는 이런 학교들이 많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많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제한된 영역 안에서만 움직이려고 하고 이는 상상력의 확장을 방해한다. 윤지선이라는 작가는 대상에 대한 편향된 생각을 우리가 만든 것을 정확하게 보는 기회를 빼앗아가는 것을 지양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본능에 관한 사유는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진행되다 어느 순간 깨달음에 있다. 깨달음이 있는 순간 다시 가벼워진다. 한 없이 무거울 수도 있는 삶에서 땅이나 담벼락, 눈, 자신의 살갗 등에 그렸던 이응노의 흔적을 같이 공감하다 보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땅 담벼락, 눈 살갗에 그리다 전

2018.5.4 ~ 7.1

이응노미술관

참여작가 : 노상희, 복기형, 윤지선, 이갑재,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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