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과 돈스코이호은 역사일뿐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의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어 왔다. 굳이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가 아니더라도 보물선을 찾겠다는 꿈을 품었던 사람들이 있다. 러일전쟁에서 보급물자 등을 싣고 가다가 울릉도 앞바다에 수장된 함선 돈스코이호는 그런 사람들의 꿈을 상징했다. 그러나 공해상에서 보물선을 찾으면 80%를 가질 수 있다는 관점은 군함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군함이 가진 상징은 그 나라의 군사력 내지 자존심과 연결될뿐더러 그 나라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이맘때쯤 가까운 여행지 일본 대마도를 갔던 기억이 있다. 대마도는 러일전쟁의 교두보로 세계 군사강국인 러시아를 패전하게 만든 결정적인 전투가 있던 곳이었다. 당연히 연장선상에서 동해는 러시아의 병참선에서 중요한 해역이었다. 돈스코이호는 1880년대 러시아 제국 발틱함대 소속의 1급 철갑 순양함으로 1905년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했다.
이곳 대마도를 지난 일본 함대는 기함 '스와로프호'를 비롯해 전함 8척, 장갑 순양함 3척, 순양함 6척, 장갑 해방함 3척, 가장 순양함 5척, 구축함 9척 및 공작선·병원선·수송선을 동반한 발틱함대를 동해 앞바다에서 모두 수장시켜버리는데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사령관이 지휘하는 일본 연합함대에 섬멸한 것이다.
날이 좋은 날에 대마도에 오르면 멀리 부산까지 보인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후 이듬해 을사늑약으로 이어져 결국 한반도가 일본에 빼앗긴 계기가 되었다. 독도를 일본 땅으로 편입시킨 것도 이때였다.
돈스코이 호가 온 국민의 관심사로 등극하게 된 것은 바로 금 모으기 운동을 유발한 외환위기 때문이었다. 전 국민이 IMF의 칼날 아래 긴축을 요구받았고 이에 정부는 여론의 탈출구가 필요했다. 분명히 외교적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금화와 금괴, 골동품이 가득 담겨 있을 것이라는 돈스코이호의 인양을 전격 승인하고 지금은 없어진 기업인 동아건설이 그 역할을 맡았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하지만 잡히지 않은 꿈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람들이 있다. 돈스코이를 가지고 꾸준하게 울 거 먹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대마도의 앞바다에서 대부분 전멸당하고 개전 다음날인 5월 28일 열심히 일본 함정을 피해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다가 결국 울릉도의 앞바다에서 수장이 된 것이다.
신일그룹은 팔지도 못할 신일 골드 코인을 사람들에게 팔면서 돈스코이호와의 연관을 만들어냈다. 기록에 따르면 나히모프 함이 대마도 앞바다에서 침몰 직전 돈스코이 함으로 군자금을 옮겼다는 것인데 200톤이나 되는 금괴를 집중 포격을 받으면서 옮겼다는 이해 하지 못할 행동을 했을까. 그런 가능성은 없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도 그 어떤 기록을 찾아볼 수도 없고 큰 규모의 함대가 장장 29,000km를 항해하면서 준비했던 군자금은 대부분 탕진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더 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