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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 역사

공주박물관 충남 역사문화실

이제 올해의 햇밤이 익어가기 시작하는 시간이 왔다. 햇밤이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백제가 고대국가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충청남도 공주에서는 백제문화제가 열린다. 공주 정안면은 특유의 사질 토양을 가지고 있으며 물의 배출이 잘 되고 땅이 피옥하다. 정안밤은 당도가 높기도 하지만 포도당·단백질·비타민A·비타민B1·비타민B2·무기질 등이 풍부해서 건강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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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의 1층에는 백제문화를 알릴 수 있는 높은 퀄리티의 전시공간을 만들어두고 2층에는 충남의 역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옛날 백제 지역인 충청도는 한 나라의 요충지였으며 산하는 왕도와 경계를 접하고 있어서 그 땅은 중국의 형주와 양주에 비견되며 토속은 시와 예를 승상 하는 기풍이 넉넉하여 사람들이 '동방의 추로'라 일컫기도 한다며 영조 4년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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뗀석기가 공주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선사시대의 흔적이 최초로 발견된 석장리 구석기 유적이 있기 때문이다. 구석기인은 주로 강변이나 동굴에서 생활했는데 석장리의 금강유역은 이동생활을 하는 구석기인들에게 중요한 생활터전이었다. 뗀석기는 말 그대로 돌에서 자연면을 떼어내어 날을 만든 도구를 말한다. 이 시대의 반도체 기술처럼 석기제작 기술의 발달은 구석기인이 생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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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는 영상으로 공주지역과 관련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원삼국(마한),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까지 순차적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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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직접 산에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겠지만 사냥과 채집으로 먹거리를 확보하며 필요한 식량을 구하기 위해 넓은 지역을 이동하며 생활했던 구석기인들이 제작한 도구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돌 모양들이 다양하지만 일정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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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 문청 동기에 새려긴 그림은 농경의례의 모습을 잘 보여주기도 하지만 청동기는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를 지나면서 중국 동북지방 등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아 기원전 15세기 무렵 시작된 청동기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생산력 증대와 인구 증가로 이어지면서 대규모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과 마을을 중재하는 우두머리가 등장하면서 충청남도에도 국가의 틀이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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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생활을 하면서 지금 보면 상당히 낮은 수준의 기술처럼 보이지만 저장용기 등이 등장하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방어시설과 도구들이 등장한다. 경상도의 고령지역에 가야문화가 꽃을 핀 것이 철기문화의 등장과 함께 했듯이 공주지역에도 철기문화로 인해 집단의 규모 확대로 이어지면서 정치제를 형성하였고 50여 개의 소국중 하나인 백제가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주변 세력을 통합하면서 고대국가 백제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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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 공간에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필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주 여자 중학교 학생들도 함께였다. 공주시는 2018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 프로그램인 '있잖아, 100년 전 공주에서'뿐만이 아니라 '공주와 함께하는 근대로의 산책', '100년 전 공주의 기억 전'등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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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선생님이 준 인쇄물을 가지고 상당히 진지하게 유물들을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적고 서로 그것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백제가 멸망하고 나서 충남은 통일신라의 웅천주에 속하였고 공주는 웅천주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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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이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역사에서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이며 지역문화가 발달하다가 조선시대에 충청남도의 전신인 충청우도가 만들어지고 해양문화가 내륙문화가 공존하면서 성장하고 많은 물자가 유통된 덕분에 조선시대 예학의 표준이라는 호서예학의 지역문화가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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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역사문화관에서는 고려시대의 충남 불교문화뿐만이 아니라 충남인의 삶과 죽음이 담긴 다양한 껴묻거리를 만나볼 수 있다. 충청도의 도명은 충주와 청주의 앞 글자를 합쳐 저서 만들어졌으며 충청우도(현 충청남도)의 중심은 공주목이고 충청좌도(현 충청북도)의 중심은 청주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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