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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7. 2018

근대

오정동 선교사촌

현대 바로 직전을 의미하는 근대는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그렇다면 정확하게 근대는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의 근대(近代)는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근대의 시점을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로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남대학교 내에 있는 오정동 선교사촌은 근대시기의 건축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시기상으로 보자면 근대가 아니라 현대시대의 건축물이다. 

한남대학교를 와본 것은 정말 몇 년 만이다. 한남대학교의 교정이 이렇게 잘 꾸며져 있었던가. 새삼스럽게 도심 속의 생태숲길을 걷는 느낌을 만끽해본다. 위로 솟구쳐 올라간 나무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을 정도의 벤치가 만들어져 있다. 

짙은 녹음이 이제 조금씩 갈색과 형형색색으로 변하기 시작할 시간이 왔다. 나무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저 연못 속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들어가 보지는 않는다. 

한남대학교 쪽문 쪽으로 들어와서 우측 길로 백여 미터를 가면 나오는 오정동 선교사촌(梧井洞 宣敎師村)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에 있는 건축물이다. 2001년 6월 27일 대전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44호로 지정되었다.

오정동 선교사촌은 1955∼1958년에 지어진 선교사 사택들이 있는 곳으로, 이 중 최초(1955년)에 지어진 북측의 3동이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저런 건축양식을 사용하지 않지만 1950년대 국내 시대상은 붉은 벽돌에 한식 지붕을 올리고 주진입이 현관으로 모이게 하였고 서양식 건축에 한국 건축양식을 도입하였는데 주로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 이런 집을 많이 지었다. 

한남대학교 내에 이런 건축물이 있는지 아는 대전시민들은 많지 않다. 이런 형태의 건축물은 새마을운동이 한참 진행되면서 가장 먼저 사라져 갔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오정동 선교사촌은 그 형태를 유지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변에 보면 수십 년 이상의 수목들이 있어서 분위기도 좋다. 

한남대는 윌리언 에이 인톤(William Alderman Linton 1891 ~ 1960)라는 사람이 설립하였다. 이곳은 그의 부인이 설계하고 한국인 목수가 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축물들은 건설회사가 매입하여 모두 철거하고 건물을 지으려고 했으나 당시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고 그 후에 한남대가 매입하여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몇 동 되지 않는 곳이지만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살인자의 기억법이나 덕혜옹주 등의 영화가 촬영되기도 했다. 

마치 일본에 가면 이런 그림을 볼 수 있다. 오래된 건축물과 주변에 수목이 있는 형태를 일본 사람들은 참 좋아한다. 50년대 한옥 4개 동과 양옥 3개 동이 50년생 수목 및 이곳을 찾는 솔부엉이 등 52종의 희귀조류들과 어우러져 ‘도심의 문화숲’으로 오늘도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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