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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3. 2018

마닐라 시티 투어

필리핀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도시

역사와 문화가 담긴 곳이라면 어느 곳이 든 의미가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했었고 그 사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그 흔적을 지우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미다. 전 세계에는 패배와 피지배의 역사를 그대로 보존한 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그 흔적을 지우는 것보다는 그대로 남겨놓고 후손에서 그 사실을 잘 알려주는 것이 더 가치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패배했지 유구한 역사에서 계속 패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 곳은 리잘파크에서 시작한다. 그곳에는 필리핀 어머니의 동상뿐만이 아니라 필리핀의 독립영웅 호세 리잘이 있는 곳이다. 리잘파크는 호세 리잘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공원으로 필리핀 국민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1페소 동전에 그의 흉상을 넣어두었다. 

필리핀은 모계사회 중심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여자의 몫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을 가보면 알겠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쉬엄쉬엄 살며 여자들은 무척이나 바쁘다. 필리핀 여성과 국제결혼하는 일부 남자들은 그 가족을 위해 돈을 송금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필리핀 여성들의 생존본능이기도 하다. 저곳에 있는 호세 리잘의 동상 아래에는 그의 유골이 묻혀 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필리핀을 올 때면 저곳에 참배를 하는 것이 일상이다. 

리잘파크가 있는 부근에는 스페인 지배 당시 그들이 건설했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인트라무로스에는 성거 거스틴 성당을 비롯하여  성벽 안의 면적은 0.59㎢로  산티아고 요새, 산 아우구스틴 교회, 마닐라시립대학교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인트라무로스는 스페인어로 '성벽 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521년에 대항해를 하며 필리핀을 왔던 마젤란이 막탄섬의 라푸라푸 추장에게 죽음을 맞은 뒤 오랜 세월 스페인은 필리핀을 정복하려는 시도를 하였고 1571년 직후 스페인의 정복자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마닐라를 가로지르는 파시그 강어귀에 요새도시를 건설하였다. 

이곳 주변은 마닐라에서도 핵심적인 지역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성채 주변의 인구가 점차 늘어나 1905년에 성채 주위에 있던 참호가 매립되었으며 스페인의 영향이 뚜렷한 식민지 시기의 건물들이 헐리고 대신 정부 관청들이 들어섰지만 아직도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이 남아 있다. 

독특한 느낌을 받게 하는 곳이다. 필리핀에서 주요 대학이 이 부근에 모두 자리한 것을 보면 인트라무로스라는 곳이 필리핀인들에게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지 보게 만든다. 

성채도시 안에 있는 성어거스틴 성당은 어거스틴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서 지은 성당이다. 어거스틴은 기원후 354-430년까지 살았던 위대한 교부요, 사상가로 꼭 신앙이 천주교나 기독교가 아닐지라도 인생의 문제를 놓고 방황하며 고민하는 자, 진리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회의를 극복하고 확실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많은 책들을 기술하였다. 

1587년에 착공하여 1607년에 완공했으니 무려 20년에 걸쳐서 만든 성당이다. 필리핀 최초의 스페인식 성당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인트라로무스는 파괴되었지만 이성당만큼은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었다.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은 이 성당을 '기적의 교회'라고 부르고 있다.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성당에는 볼 것과 느낄 것이 많다. 화감암으로 만든 것들과 바로크식 제단, 18세기에 제작된 오르간과 19세기에 만들어진 프랑스식 샹들리에까지 볼 것과 느낄 것이 적지 않다. 

작년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간 김정숙 여사가 바로 이곳 성어거스틴 성당을 찾아서 기도하기도 했다. 


필리핀은 작은 스페인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석구석에 스페인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많다. 스페인의 건축가로 유명한 가우디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도 해서 스페인의 건축양식을 자주 보려고 하는 편이다. 

시간을 가지고 둘러보면 좋은 곳이 인트라로무스라는 곳이다. 유럽까지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가까운 곳에서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인트라로무스에 있는 건축물 등은 스페인 모더니즘 건축과는 차이가 있다. 시대적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이름을 날렸던 호세프 푸이그 이 카다팔츠나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 안토니오 가우디 이 코르네트 등은 스페인이 필리핀의 식민지배를 끝내는 시기에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벽돌로 만든 벽이나 회반죽 등으로 마감한 벽이나 모두 독특하다. 영어로 'Wall'이라는 단어는 벽으로 로마 방어체계의 일부를 형성하는 흙으로 만든 둑을 뜻하는 라틴어 '발륨 vallum'에서 유래하였다. 

유럽풍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다. 주택은 작은 도시이고 도시는 거대한 주택이라고 했던가. 결국 관광은 면세점 등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면세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장소에 대한 추억을 심어주는 것에서 판가름이 갈린다. 

"시간과 공간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장소와 경우는 그 이상의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공간이 장소이고, 사람의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시간이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과 무엇 사이를 뚜렷하게 하는 것에서 시작하라. 그렇게 만들라. 반갑게 맞아들이는 하나하나의 문을 표정이 있는 하나하나의 창문을. 그 하나하나에 장소를 만들라. 그리고 하나하나에 주택과 하나하나의 도시에 한 묶음의 장소를 만들라." - 알도 반 아이크 


아름다운 장소이면서 관광명소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이곳을 식민지배했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일본인들이 필리핀 사람들을 사형에 처했던 곳도 그대로 보존이 되고 있다. 오래된 건물에서 피의 역사가 그대로 남겨져 있다. 


스페인에 의한, 스페인을 위한, 스페인만을 위해 조성되었던 작은 성채도시 인트라로무스는 이제 온전히 필리핀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공유되고 때론 관광객들과 함께하는 곳으로 오픈되어 있다. 필리핀에서 인재를 키우는 공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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