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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2. 2018

가을 바이러스

마곡사는 익어간다. 

오늘 하루 맑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가 신선이 되는 것이다.


만족하는 삶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될까. 요즘 세태를 보면 만족하는 삶은 자신의 관점이 아니라 타인의 관점에서 재단되는 듯하다. 하루를 잘 보내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다음날을 걱정한다. 그렇게 되면 오늘은 가벼이 취급되기 십상이다. 가을은 단풍이 바이러스와 같이 퍼져나가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 어딘가로 떠나지 않으면 무언가 하루를 잘 못 보낸 것 같은 느낌마저 받게 한다. 

김구 선생이 1896년 명성왕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후 마곡사에서 은거했던 것을 회상하며 심은 향나무가 있는 마곡사로 들어가는 길은 가을 바이러스가 제대로 퍼진 풍광을 보여준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운 색이 이곳저곳에 흘러가듯이 넘쳐난다. 형형색색의 단풍, 그리고 그 누구의 채취도 섞이지 않은 것 같은 신선한 공기까지 마곡사의 가을 풍경에는 익숙함과 함께 전혀 낯설지 않은 익숙함이 있다. 

안 본 사이에 마곡사로 올라가는 계곡에는 데크가 생겨났고 입구에는 정원같이 조성된 공간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많이 변해가는 것이 마곡사다. 다가오는 시간마다 사람들은 변화를 기대한다. 때가 되면 핸드폰도 바꾸고 차도 바꾸고 집도 바꾸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저렇게 변화를 주어야 행복감을 느낀다. 

세월의 흔적이 쌓인 전통은 그냥 오래된 노스탤지어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그런 끈 같은 것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다. 같은 문화와 운동 그리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굳건히 쌓인 시간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존재감 같은 것이 있다. 

멋진 풍광이다. 마곡사로 발길을 한 것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수록 구석구석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떠나보면 예기치 않은 즐거움이 그곳에 있을지 모른다. 

마곡사 대광보전은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옛날에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이곳에서 100일 동안 기도를 하고 나서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시대에 세워져서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는 마곡사는 수많은 귀족이나 양반이 그곳에서 불공을 드렸을 것이다. 

그냥 찍어도 멋진 사진이 나오는 계절이다. 마곡사의 곳곳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색 하나로 예전에도 본 적이 있는 마곡사가 화려하게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마곡사의 색이란 그런 것이다. 

흘러내려오는 물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진다. 사람마다 삶의 속도는 모두 다르다. 마음이 벽에 부딪치는 것을 느끼는 것을 느낄 때 어김없이 다시 떠나고 싶어 진다. 사심 없이 내 마음을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이 즐겁다. 

고요한 모습의 불상이 계절에 상관없이 움직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곡사의 가을 바이러스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단풍은 빨갛게 색깔이 변할수록 더 끌어당기는 힘이 더 크다. 마곡사의 영산전 뒤에 있는 군왕대는 조선 세조가 마곡사에 행차해 ‘만세 불망 지지(萬世不忘之地)’라며 가히 군왕이 날 자리라 극찬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 6월 마곡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된 곳으로 입신양명의 수승한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군왕대의 전통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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