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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3. 2018

가을의 광덕사

가을 프레임에 갇히다. 

프레임이라고 하면 창일 수도 있고 생각의 제약일 수도 있다. 모든 것에 프레임을 붙일 수는 있다. 자기 프레임, 변화 프레임, 이름 프레임 등 시각, 사진, 고정된 순간, 단절 혹은 고립을 연상시키는 것이 프레임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단어에 프레임을 붙인다. 특히 언론에서 프레임을 많이 사용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언론을 이끌 때 프레임에 갇혀~ 이런 말을 붙이면 그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그렇지만 적어도 가을 프레임이라는 말은 듣기 좋지 아니한가. 

광덕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핀 꽃은 유난히 하늘하늘하다. 사람들은 아련하면서도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푹 빠지는 경향이 있다. 유럽의 베로나에 가면 줄리엣의 집 마당에는 줄리엣 동상이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데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대문에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저마다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기에 여념이 없다. 

숲의 정령은 살반스, 물의 정령은 간네스라고 한다. 광덕사 입구에 발길을 들여놓고 유유히 가을을 만나면서 걸어가는 순간 마치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광덕사하면 호두나무 시배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마음속의 이가 호두과자를 좋아하는 덕에 호두나무의 최초 시배지라는 의미는 조금 더 색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광덕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심어져 있는 호두나무는 천연기념물이지만 호두의 고소한 냄새는 나지 않고 있다. 

광덕사로 들어가는 느낌은 가을색이 강해서 공기 중에 부유하는 가을빛 향기와 광덕사 사찰 밥이 풍기는 냄새는 여행자들을 더욱 깊은 허기에 빠지게 하고 있다. 향기롭고 건강한 광덕산의 나물로 만든 전통 요리에 광덕사의 쌀로 만든 전통주를 곁들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공양하는 사람을 공양주(供養主), 공양의 의의를 기록한 것을 공양문(供養文)이라고 한다는데 이날은 공양보다 광덕사의 건물 뒤로 물들기 시작한 단풍들이 더 반갑다.  광덕사는 652년(진덕여왕 6) 자장(慈藏)이 창건하였고, 832년(흥덕왕 7) 진산(珍山)이 중수하였으며, 1344년(충혜왕 복위 5) 중창하였다. 

깨달은 자(覺者)를 부처라고 부른다. 부처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석가모니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부처의 깨달음에는 ① 자각(自覺 : 스스로 깨달음), ② 각타(覺他 : 다른 중생들을 깨닫게 함), ③ 각행원만(覺行圓滿 : 깨달음의 작용이 全知全能하게 충만함)의 3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모든 배움에는 스스로 깨닫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 후에 관계에서의 충만함이 같이하면 완성에 이른다. 

들고 온 음료수를 한 잔 마시면서 시선을 들면 병풍처럼 둘러선 광덕산의 나무들이 마주 보고 있다. 광덕산의 대자연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자신을 찾아준 여행자를 그렇게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모든 부처는 곧 화신불인데, 때로는 현실 속에서 보살·왕·연꽃·바위 등과 같이 꾸밈없는 사물 그 자체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단풍도 부처의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부처는 일체법(一切法), 즉 우주 만법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더할 수 없는 진리를 체득한 성자(聖者)를 의미한다고 한다. 만물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건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단풍과 사찰은 제법 잘 어울린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사라진 공간 속에 광덕사와 단풍만이 남아 있다. 광덕산 위를 부유하는 광덕사를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래도록 마주 보았다.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워라.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 있음을......

- 성 프란체스코 '태양의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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