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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3. 2018

희생이란

공주 황새바위 성지

살아가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좀처럼 친해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문명화된 곳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적당한 선을 그으며 살아가지만 해외나 전혀 다른 지역을 가게 되면 신기하게도 그 관계가 극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인연은 누군가가 다가오고나 혹은 내가 다가가야 이어진다. 노력 없이 이어지는 인연은 없다. 누군가가 끈을 부여잡고 인연을 이어가듯이 말이다. 

공주에 몇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은 공주시내의 중심에 있는 황새바위 성지는 한 번쯤은 들려봤을 것이다. 피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는 그곳에는 천주교를 통해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지금은 가을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곳이지만 불과 150여 년 전에는 가을색이 아닌 붉은 핏빛이 지워지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18세기 100여 년 동안(1797~1879)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공개 처형된 사형터인 황새바위 성지는 황새도 서식했던 곳이기에 황새바위라고도 하고, 이곳에 있던 바위가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인 황새 모양으로 생겼고, 목에 큰 칼을 쓴 죄인들이 이 언덕 바위 앞으로 끌려 나와 죽어 갔으므로 황새바위라고도 불린다. 

공주라는 도시는 도심이 그렇게 넓지 않아서 어느 곳이라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아담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사형터였던 황새 바위 성지로 인해 신을 향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로 인해서일까. 아니면 그것을 품었기 때문인지 직선 길이 거의 없는 산책길은 넉넉하게 느껴졌다. 

비가 와서 앉아서 여유를 즐길 수는 없었지만 날 좋은 날 햇볕을 보며 책이라도 읽는다면 이보다도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 같았다. 유명한 관광지보다 한적한 곳에 이렇게 숨겨진 보석 같은 장소들을 찾아내는 것이 여행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여행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데 그 사이에 내 몫으로 떨어지는 사색의 시간이 있는데 마치 마쉬멜로우처럼 달콤할 때가 있다. 

황새바위 성지에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는 낙엽들은 안 치워도 될 것 같았다. 굳이 치우지 않고 이대로 켜켜이 쌓여 가며 시간의 역사를 증명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황새바위 성지는 1985년 11월 7일에는 황새바위 순교탑과 경당이 완공되었으며, 이어 12 사도 석조 기둥 건립, 성모자상 안치, 십자가의 길 조성 사업, 피정의 집 겸 성당 건립 등이 이루어졌다. 

조금만 올라와서 보면 공주의 구석구석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11월임에도 불구하고 공주의 가을은 아직도 가을색이 가득했다. 빛바래 보이는 건물들과 새롭게 만들어진 운동장과 학교, 그리고 저 너머에 가을 옷으로 갈아 있은 나무들, 그 세가지만 있으면 공주의 가을을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마저 들었다. 사진은 결정적인 순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러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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