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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8. 2018

노량마을

하동의 비경을 펼쳐보다. 

노량마을은 예전에는 하동쪽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올라오다가 만난 기억이 있는 곳으로 이번에는 하동에서 섬진강을 따라서 내려오다가 남해의 비경을 보게 되었다. 노량마을은 말 그대로 노량해전이 있던 곳으로 이곳의 바다는 좁은 수로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서 내려오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진을 치고 왜군을 맞이하기에 전략적으로 괜찮은 곳이기도 하다. 

노랑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죽음을 맞이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 올라온 곳은 관음포다. 1597년 명량해전에서 크게 패배한 일본은 11월 왜장 고니시 등이 이끄는 500여 척의 왜선이 저 앞바다인 노량 수로와 왜교 등지에서 공격해 왔는데 그 전투에서 200여 척의 일본 수군이 격파되고 패잔선 50여 척만이 관음포 방면으로 달아나는 왜군을 추격하여 격파하던 이순신은 왜군의 총격에 쓰러진다. 

사천과 광양의 바다의 사이에 하동의 노량이 있다. 지금은 남해지역에 속하는 곳에 관음포가 있다. 당시 여수에는 좌수영이 있었고 이순신 함대는 고금도에서 출발한다.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

하동의 비경을 보기 위해 남해대교를 만든 것을 기리는 전시관의 계단을 올라가 본다. 남해도를 이어주는 남해대교는 개통 당시 동양 최대의 현수교였지만 노량대교가 개통되면서 추억의 다리가 되었고 최신의 기술이 집약된 노량대교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노량대교를 만들기 위해 걸린 시간은 3,000일이 걸렸으며 앵커리지, 주탑, 케이블, 보강거더가 주요 기술이었다. 특히 노량대교는 주탑의 완전 육상화를 실현했는데 그것을 통해 해상작업이 불필요하게 되었고 이로서 친환경 시공이 가능했다. 

이순신 장군의 전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학익진이다. 그 승리의 기억은 기념비적 교량 바다에 비치는 케이블과 야간조명으로 재현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노량대교 외에도 의미가 있는 다리들이 많다. 광양의 랜드마크라는 이순신대교, 한국의 최장 단경간 현수교인 울산대교, 한국 최초의 사장교라는 진도대교, 섬과 섬을 이어주는 금빛 대교라는 거금대교 등이 있다. 

하동에는 쌍계사, 금오산 일출, 최참판댁, 형제봉 철쭉, 청학동 삼성궁, 야생차밭, 하동포구, 불일폭포, 섬진강, 화개장터 십리벚꽃이 하동 10경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량의 풍경은 다른 하동 10경에 못지않은 풍광을 가진 곳이다. 비경이라 할만하다. 사람마다 원하고 감탄하는 비경이 제각기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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