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Dec 03. 2018

법동 석장승

보려고 해야 보이는 것들

누구나 똑같이 두 눈이 있지만 볼 수 있는 것들과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눈은 단지 무언가 사물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는 않다. 그래서 마음의 창으로 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마음의 창이 좁으면 그만큼 보는 것이 적다. 마음의 창을 넓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많은 책을 읽는 것이나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나 창은 아주 더디게 넓혀진다. 

대전에 살면서도 법동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도 있지만 법동은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다. 법동은 중리동과 함께 계획적인 주거단지로 만들어진 곳으로 단독주택의 주거지로 많이 주목을 받기도 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석장승이 있었다가 추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수없이 와봤던 길에서 석장승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법동으로 들어가는 도로의 양쪽에 석장승이 자리하고 있다. 이 돌장승은 원래 나무 장승이었는데, 약 300여 년 전에 돌장승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에 산신제와 거리제(장승제)를 지내는데 장승이 있는 지역에서 장승제를 지내는 이유 중 두 가지는 첫 번째 지역 경계를 알리고 있으며 금줄로 마을 입구에 해놓는 것은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하 대장군이라고 돌에 새겨져 있는 장승이다. 장승제를 지낼 때는 이곳에서 금줄 등을 달아놓는다. 금줄에 매다는 붉은색 고추는 남아 혹은 악귀를 쫓아내는 의미, 숯은 정화작용을 의미하며 솔가지는 생명의 상징, 박은 신성한 상질물, 게 껍데기는 개발의 위력이 악귀를 막는다고 믿고 있다. 

나무나 이렇게 돌로 만들어진 장승문화는 남근숭배 사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 퉁구스 기원설, 남방 벼농사 기원설 등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자연석에 눈·코·입 등을 다듬어 표현한 남·여 한 쌍의 돌장승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고 해두었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둘 다 대장군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다. 작은 입과 턱선을 둥글게 처리하여 순한 인상을 주는 여장승은 남장승과는 달리 귀를 만들어 사실적인 느낌을 받게 한다. 

남장승과 여장승 옆에는 각각 선돌이 서 있는데 남장승 옆의 것은 길쭉하여 남성을 상징하는 듯하고, 여장승 옆의 것은 펑퍼짐하여 여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마을의 장승제는 장승의 조성시기와 맞물려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곧 조선 후기로부터 제의가 유래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고 전한다고 한다. 

법동이 개발되기 전에 이 근처를 수없이 지나다니면서 학교를 다녔기에 이곳 근처의 원래 지리를 기억하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 조그마한 골짜기인 법천골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한복판을 흐르는 냇가를 중심으로 장승이 서 있었다는데 자세히 보지는 않아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장승제를 지내는 제관은 생기복덕을 보아 엄격하게 선정하였다고 하는데 제의 준비가 이루어지면 제관과 축관, 구청장, 시의원, 마을 주민 100 여명이 제장에 임한다. 이어 분향강신, 초헌, 독축의 순으로 제사를 지낸다.  법동에 택지가 조성되었을 때 대덕구청으로 옮겨졌다가 법동 입구 도로 양쪽으로 모셔진 이 장승은 현재 대전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1989.03.18 지정)로 지정이 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구 왕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