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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09. 2018

통영 View

여행 1번지 세병관

조선시대의 궁궐은 나라의 가장 으뜸 가는 곳으로 궁궐의 건축물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최고의 자재, 최고의 격식으로 지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남해에서 가장 멋진 공간 통제영에는 서울의 궁궐에 못지않은 기술로 지어진 세병관을 비롯하여 남해를 모두 방어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조성되었다. 궁궐이 왕과 왕비와 각종 정치적 사건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생활공간이지만 삼도수군 통제영은 말 그대로 방어와 전투를 위한 모든 것이 있었던 곳이다. 

통영에  자리한 삼도수군 통제영을 다시 들어가 보는 것은 두 번째다. 지난번에 왔을 때와 어떤 것이 다를까. 우선 그때는 세병관이 보수 중이어서 온전한 세병관을 보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복원된 세병관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올라가지 않았던 위쪽까지 올라가서 통영시내를 조망해봐야겠다. 

조선 후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3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해상 방어 총사령부의 터인 삼도수군 통제영은 19세기 중엽의 통영성에는 4대 문(大門)과 2 암문(暗門) 그리고 3포로(鋪樓)가 있었고, 세병관을 위시하여 100여 개의 관아가 있었으니 조선의 궁궐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한다. 

조선 시대 궁궐은 크게 외전과 내전으로 나뉘게 되는데 외전에는 정전과 편전 외에 궁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이 머무는 관청이 있고 군사들이 머무는 건물이 있고 내전은 왕과 왕비가 거쳐하는 침전을 비롯하여 다양한 별당과 대비전, 동궁전, 후원 등이 있듯이 통제영에도 근무를 위한 공간과 쉼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통제사를 비롯한 관리들이 머무는 공간이 따로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세병관을 제외한 건물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지금은 많이 복원되어 옛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세병관은 다시 보아도 그 위용이 상당하다. 전국에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이 어디에 있을까란 생각을 할 정도다. 무려 45칸에 달하는 이 건물은 일제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안으로 걸어서 들어가 볼 수 있기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보았다. 수많은 그림과 채색, 완성도로만 본다면 세병관은 우리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을만한 건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통제영은 1895년(고종 32)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그대로 유지되었다. 

삼도수군 통제영의 건물의 상당수는 공방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삼도를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물자를 이곳에서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통영에는 수많은  공방들의 기술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어떤 여행지를 볼 때 보통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겉으로 보며 전체적인 윤곽을 보는 방법과 하나는 디테일을 보면서 그 속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모든 여행지는 한 번에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쉽지 않다. 계절마다 다르고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진다. 

이번에 삼도수군 통제영은 통영을 바라볼 수 있는 통영 view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 한국의 아파트가 가벽을 사용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 역사에서의 건물은 힘을 받는 벽이 아니라 장식이나 공간을 나누기 위한 벽체인 가벽을 오래전부터 사용했다. 세병관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일반 기중인 평주보다 키가 큰 기중인 고주가 눈에 뜨인다. 평주 안쪽에 세워 건물의 뼈대를 형성한다. 

위로 걸어서 올라가면 저 멀리 통영의 바다가 보인다. 

이곳까지 올라오면 삼도수군 통제영의 지붕이 펼쳐진다. 지붕의 형식은 건물의 격식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데 대표적인으로 맞배지붕, 우진각 지붕, 팔작지붕이 들 수 있는데 세병관은 궁궐 건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팔작지붕으로 정전, 편전이나 침전, 별당 등은 모두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보이는 건물들은 통제사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휴식은 인생에서 무척 중요하다. 일이란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랑이라고 한다. 무관심한 태도로 빵을 굽는다면 먹는 이의 허기를 반밖에 채우지 못하는 쓰디쓴 빵을 만든다고 한다. 일에 집중하는 것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조금 전 삼도수군 통제영의 위쪽에서 바라본 통영의 바다로 내려와 보았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5관(순천, 흥양, 광양, 낙안, 보성), 5포(사도, 여도, 녹도, 방답, 발포)를 둔 작은 수군기지였지만 이순신이 연전연승을 하고, 통제사를 겸하게 되면서 통제영이 만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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