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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0. 2018

용비어천가

음성 권제 부조묘

조선을 건국한 육조(六祖)의 업적을 찬양하고, 후대의 왕에게 왕권의 확립과 수호를 권계(勸戒)하는 송축가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세종 27년에 정인지, 권제, 안지 등이 편찬한 장편 서사시다. 악장 문학의 대표작으로 목조부터 태종까지의 공적 찬양을 통해 천명성(天命性)을 강조하며, 후왕을 권계하고 백성들의 교화(敎化)를 도모하였다. 

용비어천가를 쓴 사람 중 한 명인 권제의 흔적은 바로 음성에 있었다. 권제 부조묘는 권제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만들어졌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만들어졌다. 

권제 부조묘는 1901년에 재건하였고 1960년에 중수하였는데 이 부조묘에는 처음에 아버지인 권근의 위패와 권제의 위패를 봉안하였는데 권제는 자가 중의이며 호는 지매, 본관은 안동이다. 권제는 세종대에 집현적 부제학, 경기도 관찰사, 이조판서, 우찬성의 벼슬을 지냈다. 

세종이라고 하면 훈민정음을 최고의 업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훈민정음으로 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용비어천가는 전체 125장으로 제1장이 3구, 제125장이 9 구로 된 것만을 제외하고는 각 장이 대체로 4구 2절(전절 · 후절)의 형식으로 한글이 만들어질 당시의 국어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권제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용비어천가다. 살아생전에 주요 벼슬을 했던 권제는 시대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용비어천가의 주요 내용은 민간에 전해지는 육조(六祖)의 찬양할 만한 일화들을 채집하여 주요 제재로 삼았기에 전승적, 서사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훈민정음 반포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한 용비어천가는 국가의 언어가 가질 수 있는 권위가 부여되는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시험에 사용되었다. 

권제는 용비어천가뿐만이 아니라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고려사는 조선 건국 합리화라는 정치적 목적과 아울러 이전 왕조인 고려의 무신정권기∼우왕·창왕기까지의 폐정을 권계하고 교훈을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편찬되었다. 권제부조묘는 갑산리에 너치실골과 범무실골을 사이에 두고 충북 음성군 소이면 갑산로 135번 길 138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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