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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07. 2019

옛날의 치안

국보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치안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사회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으로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와 범죄 예방·진압 및 수사 등이 모두 포함이 된다. 최근에 병원에서 발생한 문제로 인해 치안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빈부, 직위, 사는 지역 등에 상관없이 모두 안전해질 권리가 국민에게는 있다. 그렇지만 모든 공간에서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 시스템이 발달하고 국가가 주도하는 치안이 현대화된 지금도 이럴진대 옛날에는 어떠했을까. 

국보 제7호로 지정이 된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국보 제7호로 지정이 될 만큼 중요한 문화재다.  고려 현종 12년 (1021년)에 사찰을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현종 17년 (1026년)에 세운 비로 이곳에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밑의 남해에 가면 현종이 아들을 보기 위해 걸었다는 길이 있는 사천시라는 지역이 있다. 

현종은 역대 국왕 중 누구보다도 백성을 사랑한 왕이었다. 거란 침입 이후 굶어 죽는 자들이 속출하자 “나 혼자만 호의호식할 수 없다.”며 화려한 밥상을 거절할 정도였다고 한다. 즉위하자마자 성종이 폐지시킨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킨 것도 그의 호불적 성향을 알 수 있는데 강도의 출현이 많았던 이 지역에 사찰과 숙소를 지어서 치안을 강화했다는 현종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전각 안에는 거북상이 비를 지지하고 있다. 귀부는 지대석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어룡의 머리가 정면을 보지 않고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귀부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는 좀 다르다.

현종은 왕이 되기가 힘든 처지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현종은 992년 태조의 아들인 안종 욱(제5 비 신성왕후 김 씨 소생)과 경종의 제4 비 헌정왕후 황보 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경종이 죽자 과부가 된 헌정왕후가 숙부인 안종 욱과 불륜을 저질러 낳은 아들이 바로 현종이었다.

사찰이 있었던 자리를 사지라고 하는데 현종의 그 의지가 담긴 갈기비가 더 의미가 있어서 그런지 홍경사지가 아니라 봉선홍경사 갈기비로 불리고 있다.  18세기 중엽 야경국가 사상은 시민의 자유 보장을 위해 치안을 중요시했는데  "치안이 좋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치안 유지를 목적으로 한 모니터링 및 권한 강화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 정보 침해 등 인권 침해를 가져올 폐해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치안 유지는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안전 보장과 함께 국가의 최소한의 역할 중 하나로 생각되고 있으며, 안정된 국민 생활의 필수적인 기초다. 시대를 막론하고 생활을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사람의 바람이다. 1,000여 년 전에 백성을 위하여 건물을 세우고 사찰을 지었던 현종의 마음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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