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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24. 2019

말모이

글이 가진 힘이란 무얼까. 

민족의 역사와 혼을 깨끗이 지우는 방법은 압제도 아니고 폭력도 아니다. 그들이 가진 말과 글을 지우는 것이다. 일본이 초반에는 강제적인 방법으로 한민족을 억압하다가 강점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글을 지우기 시작했다. SNS가 활성화되더라도 글을 읽지 않는 것은 혼을 읽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글은 혼이며 정신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이 새로운 말줄임이나 언어를 창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그 때문이기도 하다. 

1940년대 우리말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경성에서는 우리말을 하고 쓰는 것 자체가 불법인 세상이다. 일본 강점기 말기에는 완전한 병합을 위해 우리말을 지우고 있기에 역행하는 조선인들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될 대상이었다. 그리고 출세를 위해서 많은 조선인이 일본말을 배우는데 더 많은 공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중에서 활약이 유달리 돋보이는 사람들을 보통 친일파라고 우리는 말한다. 

돈도 아닌 말을 대체 왜 모으나 싶었던 판수는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뜨고, 정환 또한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에 힘을 보태는 판수를 통해 ‘우리’의 소중함에 눈뜨게 된다. 말을 모은다는 의미의 말모이는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과정일 일컫기도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주시경 등이 1910년 무렵에 조선 광문회에서 편찬하다 끝내지 못하였다.

필자가 글을 쓰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정신이 녹아들어 가 있기에 사람들이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통일된 표기법을 주장했던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주시경은 조선 광문회에서 〈신자전 新字典〉의 국어 풀이를 제자 김두봉과 함께 맡아보았으며, 최초의 국어사전인 〈말모이〉 역시 제자인 김두봉·권덕규·이규영 등과 더불어 편찬했다.

당시 암울한 시대적 배경하에서 국권을 회복하고 민족의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민족적 자각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바탕에는 우리말이 있었다. 말과 글을 잘 수리하여 보전한 민족은 부강해지고, 그렇지 못한 민족은 빽빽한 공기가 성긴 공기를 침투해 들어가듯이 다른 나라에 국가를 빼앗기게 된다고 그는 역설했다. 한국가의 언어는 그 독립의 성으로, 그 가운데 독립의 성인 언어가 가장 중요하여 무엇보다 먼저 말과 글을 갈고닦아야 한다. 그것이 나이가 든 성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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