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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2. 2019

포구(浦口)

하동포구는 나루터가 아니오.

진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곳은 예로부터 나루터였던 곳이나 아직도 물길이 드나든다면 나루터의 기능을 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면 대전의 신탄진(新灘津)은 대전의 북쪽 관문의 역할을 하면서 나루터로의 기능을 했다. 신탄진이란 이름은 읍지나 고지도를 살피면 회덕현 북면(또는 서원 북면)과 문의현(현재의 현도면 양지리)을 잇는 나루로 기록되어있다.  나루터가 있는 곳에는 장터가 열리고 포구가 있는 곳도 장터가 열리는데 보통 포구가 있는 곳은 큰 장터가 열린다. 하동에 그래서 장이 크게 섰던 모양이다. 

포구(浦口)는 바닷물이나 강물이 드나드는 ‘개(浦)’ 중에서 배가 입·출항할 수 있는 곳이다. 국도변에 자리하고 있어서 쉬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하동포구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기능에 따라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건너는 나루와 배가 입·출항하는 포구로 나누어진다. 바닷가에 있는 해상 포구와 강가에 있는 강상 포구로 구분이 된다. 이곳은 섬진강 강가에 있으니 강상 포구다. 그렇지만 바닷물이 들어오기도 하니 해상 포구의 일부 역할도 수행을 했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의 방역(邦域)·산천(山川)·풍속(風俗)·산물(産物) 등을 기록한 지지(地誌)들이 많이 있는데, 지지에서 포구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포구는 전통적인 배들이 드나들던 작은 공간에서 차츰 큰 배가 드나드는 항구로 발전하였기에 전통적인 포구는 거의 사라졌다. 

하동포구의 이 길은 하동을 배경으로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한 드라마 허준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허준의 마지막 장례 행렬 장면이 섬진강변에서 촬영이 되었다. 

“부의 서쪽 수리쯤에 있으며 근원은 전라도 순창·보성·남원에서 나와 합하면서 곡성현 압록원에 이르고, 구례를 지나 화개동에 이르러 쌍계수와 함께 모여 깊은 강이 된다. 이후 호남과 영남의 경계를 틔워 부의 서남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니 조수가 백여 리를 거슬러 올라온다.” - 하동부읍지(河東府邑誌)

하동과 구례는 바로 경계를 두고 자리한 지역이다. 구례 남쪽의 구만촌(九灣村)은 거룻배를 이용하여 생선과 소금 등을 얻을 수가 있어 가장 살 만한 곳이라고 택리지에서 등장하는데 이는 하동을 의미한다. 바다와 들, 산을 하나로 이어 주던 하동포구 80리 뱃길은 지리산·섬진강·남해에 결코 뒤지지 않은 하동 문화의 중심에 하동포구도 큰 역할을 했다. 

도도하게 흐르는 것은 섬진강의 강물만은 아니다. 세상의 모두 그러하며 그것을 누가 바꿔놓겠다고 해서 바꾸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동포구를 아는 '지'에서 또 다른 것을 배운다. '지'를 구하면서 잘 배우지  않으면, 소질이 늘어나지 않고 풀이 무성하게 되어 아는 체하게 된다고 한다. 오늘도 아는 체보다는 아는 것을 갈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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