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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4. 2019

홍산현 관아(鴻山縣 官衙)

역사 속 스토리텔링이 있는 곳

전쟁은 많은 것을 피폐화하고 특히 고위층보다는 하층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1596년(선조 29) 한현은 충청도 홍산현(鴻山縣 : 부여) 무량사에서 이몽학과 만나 역모를 모의하고 도천사(道泉寺)의 승려들과 인근 가난한 농민 6~7백 명을 규합했는데 이때는 임진왜란으로 백성들이 무척 배고프고 힘들 때였다. 영화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에서 표현된 이몽학의 난의 배경지가 홍산현이다. 이몽학의 난(李夢鶴-亂)은 1596년 임진왜란 뒤 정유재란 전 이몽학이 불만에 찬 농민들을 선동하여 충청도 일대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부여의 홍산 지역은 예전부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고려말 충신이었다는 최영 장군은 이곳에서 왜구를 격퇴하기도 했다. 고려말에 원나라에 내정간섭을 받았으나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는데 원나라에 대항하던 한족이 중심이 된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게 된다. 홍건적은 고려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고려는 외면하고 원나라에 쫓기던 홍건적이 고려로 들어와 약탈을 일삼기까지 하였다. 동시대에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면서 무로마치 막부가 그 자리에 들어선다. 금강과 만나는 부여, 강경지역은 당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쌀의 해상 운송의 요충지였기에 왜구의 침약이 많았다. 

부여 홍산현 관아(扶餘 鴻山縣 官衙)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지만 고려시대에도 이 지역을 다스리는 행정관청이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홍산현 관아의 동헌은 제금당(製錦堂), 정사당(政事堂), 현악당(賢樂堂), 한산 정사당(翰山政事堂), 청성헌(淸省軒) 등의 당호가 있다. 

1914년 홍산현이 부여군에 통합된 이후 홍산현 관아는 일본군 헌병대의 사무소로 쓰인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을 검거하던 곳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홍산현은 독립적인 현이었는데 백제 시기엔 대산현으로 불렸다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된 뒤 한산(翰山)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고려 초에 현산현으로 불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려시기엔 속현이었다가 1413년(태종 13년)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홍산에 이른 최영 장군은 왜구의 화살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왜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왜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최영 장군의 업적을 기려 태봉산성 정산에 홍산 대첩비를 세웠다. 그 뒤 왜구들은 늘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는 백발의 최만호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최영을 두려워하였다. 이후 왜구의 기세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홍산대첩은 최무선의 진포대첩, 이성계의 황산대첩과 더불어 고려시대 왜구 토벌의 3대 대첩으로 지금도 홍산대첩제를 매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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