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현 관아(鴻山縣 官衙)

역사 속 스토리텔링이 있는 곳

전쟁은 많은 것을 피폐화하고 특히 고위층보다는 하층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1596년(선조 29) 한현은 충청도 홍산현(鴻山縣 : 부여) 무량사에서 이몽학과 만나 역모를 모의하고 도천사(道泉寺)의 승려들과 인근 가난한 농민 6~7백 명을 규합했는데 이때는 임진왜란으로 백성들이 무척 배고프고 힘들 때였다. 영화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에서 표현된 이몽학의 난의 배경지가 홍산현이다. 이몽학의 난(李夢鶴-亂)은 1596년 임진왜란 뒤 정유재란 전 이몽학이 불만에 찬 농민들을 선동하여 충청도 일대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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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홍산 지역은 예전부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고려말 충신이었다는 최영 장군은 이곳에서 왜구를 격퇴하기도 했다. 고려말에 원나라에 내정간섭을 받았으나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는데 원나라에 대항하던 한족이 중심이 된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게 된다. 홍건적은 고려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고려는 외면하고 원나라에 쫓기던 홍건적이 고려로 들어와 약탈을 일삼기까지 하였다. 동시대에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면서 무로마치 막부가 그 자리에 들어선다. 금강과 만나는 부여, 강경지역은 당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쌀의 해상 운송의 요충지였기에 왜구의 침약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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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홍산현 관아(扶餘 鴻山縣 官衙)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지만 고려시대에도 이 지역을 다스리는 행정관청이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홍산현 관아의 동헌은 제금당(製錦堂), 정사당(政事堂), 현악당(賢樂堂), 한산 정사당(翰山政事堂), 청성헌(淸省軒) 등의 당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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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홍산현이 부여군에 통합된 이후 홍산현 관아는 일본군 헌병대의 사무소로 쓰인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을 검거하던 곳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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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현은 독립적인 현이었는데 백제 시기엔 대산현으로 불렸다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된 뒤 한산(翰山)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고려 초에 현산현으로 불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려시기엔 속현이었다가 1413년(태종 13년)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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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홍산에 이른 최영 장군은 왜구의 화살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왜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왜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최영 장군의 업적을 기려 태봉산성 정산에 홍산 대첩비를 세웠다. 그 뒤 왜구들은 늘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는 백발의 최만호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최영을 두려워하였다. 이후 왜구의 기세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홍산대첩은 최무선의 진포대첩, 이성계의 황산대첩과 더불어 고려시대 왜구 토벌의 3대 대첩으로 지금도 홍산대첩제를 매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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