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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부일배의 처단

개바위 농암장터와 운강이강년의 의병항쟁

상주에서 대전으로 가려면 넘어오는 길목에 문경을 스쳐 지나간다. 그곳에 운강 이강년의 행적이 있어서 살펴보았다. 개바우공원이라고 명명되어 있어서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마을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곳이기도 했다. 농암 장터가 서는 곳이며 문경을 대표하는 운강 이강년 선생이 을미사변이 일어나던 해에 안동관찰사 등 친일부일배 3명을 처단하고 창의의 깃발을 높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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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에 문경에서 태어나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다가 김옥균이 일으킨 1884년 갑신정변을 계기로 낙향하여 학문에 몰두했던 이강년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비분강개하여 일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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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바우공원이라고 검색하면 내비게이션 등에서 검색이 잘 되지 않는다. 아자개장터를 검색하고 오면 그 길목에 개바우공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에 항전을 한 그 공을 기려 18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하였다. 그의 흔적은 군과 관련된 박물관 등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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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 주변에 아무것도 없지만 옛날에는 농암 5일장이 서던 곳이다. 이 지역 출신들은 한우물, 동바리, 북실, 말바우, 연천, 농바우, 사현, 갈골, 낙수바우, 화산, 서만, 쌍용등에 대한 지명이 익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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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 앞을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 일 것이다. 이곳에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농암1리 냇가에 개 한 마리가 지나가자 종곡리의 괴정 뒷산에서 호랑이가 잡아먹으려고 노려 보내는데 반대편인 성재산 밑에 있던 사자가 노려보면서 견제하면서 서로를 잡아먹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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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일본과 항전하던 이강년은 1907년 7월 7일 제천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것을 비롯해 9월 16일에는 싸릿재[杻峙], 9월 27일에는 죽령, 10월 5일에는 고리평(故里平), 10월 23일에는 백자동(柏子洞)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비슷한 시기인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데 이때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났고 경북 동해안과 동남쪽에서는 정환직과 정용기 부자가 산남의 진을, 평민 의병장이었던 신돌석이 영릉의 진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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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 이강년은 1908년 6월 4일 청풍(淸風)·작성(鵲城)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결전에서 발목에 총알을 맞고 일본군에게 붙잡힌 후 같은 해 7월 8일에 서울의 일본군 헌병사령부로 압송되었다가 다시 평리원으로 옮겨져 9월 22일에 교수형을 선고받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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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자는 사물마다에 어울리는 이름을 주고,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그 말을 입에 올려야 한다. 이것을 말로 한다면 반드시 사태가 호전되어야만 하고 있는 것이 실현된다. 군자는 자기 생각을 위로 관철하고 소인은 자기 생각을 아래로 내리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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