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백운사 이야기
누군가는 이곳에 왔다. 그리고 무언가를 남겼다. 종교와 관련된 휴일은 365일 중 대표적으로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과 예수가 태어난 날이다. 어떤 이에게는 종교나 철학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휴일로 생각한다. 고려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연등놀이는 석가모니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대표적인 놀이다. 2월 8일, 4월 8일의 설이 있으나, 중국·한국에서는 음력 4월 8일로 기념하여왔다.
지금까지 타성으로 살아왔다면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단점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단점을 보강하기 위해 혹은 고치기 위해 일상생활의 패턴에서 벗어나게 된다. 처음 창건했을 때는 숭엄산의 그 이름을 그대로 따라 숭엄사라고 불리기도 했던 백운사는 흔 구름 속의 사찰과 같다고 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올라가 보면 그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백운사는 무려 801~888년까지 살았던 통일신라시대 무주 무염 스님이 창건하였으니 1,000년이 훌쩍 넘은 사찰이기도 하다.
꽃이 보이지 않아도 그대 마음밭은 이미 꽃밭이라는 말이 있다. 백운사의 유물 유적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으며 고려시대 때 정연당스님의 부도가 현재 남아 있다. 성주산문의 수행도량이었다가 임진왜란 때 성주사와 함께 전소되었다가 조선 순조 26년 (1825년) 중건된 사찰이다.
백운사에도 있는 구산선문이 개창되면서 선불교의 대중화를 이끌어내었다고 한다. 선원은 2001년에는 선원이 90개로 늘었고, 정진대중은 1826명에 달했으며 2005년도에는 선원은 91개로 증가폭은 없지만, 선원에 방부를 들인 스님은 2115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봄이 깊어지기 시작하면 도량을 찾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잦아지고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전국의 어느 사찰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화엄경을 보면 몸과 말과 마음을 잘못 사용하면 지옥, 아귀, 축생의 과보를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번드르르한 말을 한 죄로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거나 발음이 분명하지 못한 과보를 안을 거라 한다.
수행의 경지에 들어가려면 정직한 마음, 부드러운 마음, 참을성 있는 마음, 조복 시키는 마음, 고요한 마음, 순일하게 선한 마음, 혼란스럽지 않은 마음, 그리움이 없는 마음, 넓은 마음, 큰마음이라는 열 가지 깊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고 한다. 백운사에 있는 문화재자료는 유형문화재 제233호로 지정된 보령 백운사 목조보살좌상과 영식필 산신도 백운사본이다. 목조보살좌상은 상체가 길고 넓은 무릎에서 오는 신체 비례와 근엄한 얼굴 형상이 특징이며 영식필 산신도 백운 사본은 19세기 산신도의 일반적 형식을 잘 반영하는 성주산 백운사 산신탱화라고 한다.
사찰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라는 문구다. 현명한 답은 갈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가지 않았을까. 불교가 인도에서부터 중국으로 이어져 달마 대사부터 6조 혜능 대사까지 걸었던 중국 내 길이 무려 2400여 ㎞라고 한다. 아무튼 부처님 오신 날에 사찰에 가면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 사찰 밥이 의외로 맛이 좋다. 원래의 불교는 사람들을 통치하거나 재산을 탐하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배워볼 수 있는 하루인 부처님 오신 날이 온다.
귀중한 것을 찾으려면 물결을 가라앉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