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성인이다.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성인이라고 볼 수 없다. 법률상의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 만 20세가 되지 못 한 나이에 있는 사람을 미성년자라고 한다. 그런데 그 나이를 넘어섰다고 해도 성년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자신의 본능에만 충실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상처만을 남긴다. 그래 놓고 계속 과오를 되풀이한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이성관계는 너무 신중한 것도 그렇지만 가볍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낫다. 남녀 간의 관계에서는 신뢰라는 것이 기반이 되어야 하고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 그런 신뢰라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남자가 있다. 이로 인해 두 가정의 미성년인 청소년들은 상처를 받게 된다. 영화 미성년은 그렇게 시작한다.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남자가 다른 편부모 가정의 여자와 관계를 하고 애까지 가지게 된다. 주리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집안의 딸이며 바람을 피우고 있는 가정의 딸은 윤아다. 두 명의 청소년은 서로 접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성격이 참 다르지만 한 남자로 인해 엮이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바람피우는 남자 대원도 책임감이 없지만 이혼한 미희의 전남편 박서방 역시 대책 없이 살아가는 캐릭터다. 철없는 남자 두명중 조금 더 나은 사람의 손을 들어주라면 대원이라고 볼 수 있을까.
바람이지만 사랑한다고 믿은 미희와 갑작스럽게 사실을 확인한 영주는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지만 미성년인 주리와 윤아는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직시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어차피 결과는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영화는 마치 일본의 영화처럼 담담하게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과도하게 해피엔딩으로 가던가 새드엔딩으로 가려는 기존의 한국영화와 달라서 좋았다.
남자들이 덜 성숙한 것은 사회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고 가정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까. 특히 인생 한 방을 좋아하는 남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이걸 할 사람이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도 한다. 필자 주변에도 그런 남자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이렇게 말해준다. 응 넌 그걸 할 사람이야. 인생 한 방은 없다. 만약 어쩌다가 한 방이 왔다면 그건 행운이 아니라 불운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불행한 일을 감추기 위해 한 방이 먼저 온 것뿐이다.
김윤석이 처음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불륜 소재 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했다. 남자를 아버지나 남편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서 구원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부인과 헤어질 용기도 없었으면서 용기 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대원은 모든 것이 들통나자 고작 여행이나 가자면서 아내에게 절절맨다. 어른이라고 해서 모두 어른은 아니다. 주리와 윤아가 다니는 학교의 담임선생조차 지질함의 전형을 보여준다. 성인만 되었을 뿐이지 우리는 대체 가정과 학교에서 무얼 배우면서 나이를 먹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