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심당 짚공예 연구소
흔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짚으로 만든 제품은 짚신이다. 일본이 고무신이라는 혁신적인 신발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백성들이 신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신발이 짚신이었다. 농경이 기본이던 시대에 볏짚은 가장 소중한 재료이기도 하며 벼에 대한 신앙으로 많은 것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짚이 우리의 주변에서 그냥 쌀을 생산하고 난 별 볼 일 없는 것이지만 농민들에게는 필요에 따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재료이었다.
음성의 무척 한적한 곳에는 희소하게 짚공예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다. 짚으로 만든 것은 그 특성상 다른 유물들처럼 오래된 것이 없고 대개가 30∼40년 정도만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농가에서 사용하는 도구는 대부분 짚공예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흔한 것으로 멍석이다.
날 좋은 날 심당 짚공예 연구소는 음성의 숨겨져 있는 농경문화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짚으로 만든 것은 앞서 말한 멍석이나 말린 벼를 담아 보관하는 섬이 있는데 둥구미나 짚독에 담아 보관하였는데 통풍이 잘 되고 습기가 차지 않아 곡식을 오랫동안 보관하기에 알맞았다. 현대에는 보통 20kg이나 10kg 단위로 쌀을 사서 먹지만 조선시대에는 섬 단위로 팔아서 먹었다.
이곳은 짚과 관련된 다양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신골을 담는 신골망태, 연장 넣는 연장 망태, 개똥 줍는 개똥 망태나 재나 여물을 퍼내는 삼태기, 부엌에서 깔고 앉던 방석, 독을 덮던 두트레방석 등등 수많은 것들이 모두 짚으로 만들어졌다.
아기자기하지만 참으로 소박하다. 소박함만으로 백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과도하지 않게 꼭 필요한 것을 실생활에서 구해 쓰는 지혜가 있었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많이 사용되며 중요한 것은 짚신이었다. 우리는 하나의 짚신으로 이해하지만 남자들이 신던 투박한 막치기, 여자들이 신던 고운 신, 삼을 섞어 삼던 미투리, 상중(喪中)에 신던 엄짚신, 눈 오는 날에 신던 둥구니신등 필요에 따라 덧대기도 하고 다르게 짚을 꼬아서 만들기도 했다.
용구새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있지만 시골 초가집에서는 매년 용구새를 만들어 올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용구새는 늦가을 모든 추수가 끝나면 그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일로 집을 손질하거나 흙담에 올리는 등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다.
심당 짚공예 연구소를 운영하는 심당(心堂) 강태생(姜泰生)은 1925년에 음성군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짚공예와 관련된 민속 문화재를 발굴하고 수집하여 연구하는 일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는 곡식을 퍼 담아 옮기는 데 사용하던 삼태기를 비롯해 가마니, 쇠덕석, 통가리, 누에섬 등 100여 종의 전통 공예품 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자연에서 생산되는 것을 소중하게 여겼던 백성들의 마음이 담긴 것이 짚공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