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속의 청양

청양군 백제문화체험 박물관

백제의 고도는 한성, 웅진, 부여로 이어지며 삼국시대의 한축을 담당했던 백제의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한성은 조선의 수도로 오랜 시간 자리하면서 백제의 고도라기보다는 조선왕조의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백제는 충청남도의 공주와 부여의 고분군 등을 중심으로 많이 알려졌다. 그렇지만 공주와 부여의 사이에 자리한 청양은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물론 청양이라는 지역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지는 않다. 백제 속의 청양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원삼국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청양은 적지 않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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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 백제문화체험 박물관은 청양에서 발굴된 백제의 유적 및 백제 속의 청양의 모습을 비롯하여 토기문화와 다양한 유물, 관광자원 등에 소개에 이어 청양군의 근대역사와 비봉광산, 청양광산, 삼봉광산, 중천 청양광산, 구봉광산 등 대표적인 광산의 소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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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본 적이 있는 공주~서천 간 고속도로 공사현장(제3공구)에서 청동기에서 원삼국, 백제시대에 이르는 집터, 무덤 등의 유구 와 유물이 다양하게 발굴되었는데 이곳에 그 현장이 재현되어 있다. 공주~서천 간 고속도로 공사현장인 정산면 학암리에서 백제시대 토기 가마터와 청동기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 등이 다량으로 발굴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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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의 기술은 고대시대에 앞서가는 기술이었기에 토기를 수출하는 것을 넘어서 그 토기를 만드는 체계를 만드는 가마를 전수하는 것은 국가 간에 중요한 일이었다. 분향리 유적지에서는 충남지역에서 발견된 원산국 시대 토기 가마의 예이기에 귀중한 유적이다. 특히 대가야시대에 적지 않은 토기 분점이 퍼진 것은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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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C의 백제는 비교적 세력이 강하던 시기였다. 신흥국가였던 신라는 기존 연맹국가였던 가야 등의 세력과 연계하기도 했다. 청양지역은 당시 사시랑현, 고량부리현, 열기현등으로 관리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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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에서만 백제의 고분과 관련된 유적이 20여 곳에 이를 만큼 적지 않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백제의 고분 등에서 발견된 유물을 보면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청양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도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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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의 지형을 보면 차령산맥의 지맥이 군의 중앙을 뻗어내려 군의 중앙에 칠갑산(561m)이 솟아 있다. 수계를 보면 금강이 군의 남동부 경계를 흐르며, 잉화달천과 추동천·대치천 등을 합류하는 지천천이 금강에 흘러들며 군의 북부에는 국사봉(489m)·법산(459m)·백월산, 남동부에 계봉산(211m)·앵봉산, 남서부에 성태산(631m)·구봉산·백월산·조공산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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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발전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이루어지기도 했다. 청양은 청양만의 색채가 있는 경제권을 만들고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군내에는 고속도로나 철도가 지나지 않아 교통이 불편하지만 청양만의 색깔은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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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1980년대의 청양의 생활상은 다른 지역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지역의 경제는 광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도 있으며 특히 금광이 많이 발달했다는 것이 충남의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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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에 청양의 정산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자란친구가 있어서 그 지역을 가본 기억이 난다. 지금은 교통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지만 당시 청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래 걸리고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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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에 있는 탄광에서 주로 채굴되던 광물은 석탄, 질석, 텅스텐 등이었다. 석탄은 보령을 비롯하여 충청남도에도 적지 않은 산지가 있어 일반적으로 생산되던 광물이었고. 질석은 경량 콘크리트나 절연체, 포장물질, 종이. 페인트, 플라스틱의 충전재 등에 사용되었다. 텅스텐 광산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자원적으로는 편재되어 있고, 우리나라(남북한 포함)도 텅스텐 광석의 세계 주요 생산국 중의 하나이다. 상은 1911년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처음 발견된 뒤, 1912년 강원도금강산의 광산, 1913년 충청남도 청양군의 청양광산, 충청북도 중원군(현재의 충주시)의 대화(大華)광산 등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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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의 광업은 남양면 구봉광산에 의해 주도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개발되기 시작한 구봉광산은 1960년대에 연간 1,000㎏이 넘는 금을 생산해 청양군의 발전을 주도하기도 했다. 금 생산량은 충청남도의 총 금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1991년 이후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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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이나 자철석, 방해석, 텅스텐, 질석 등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통 사람들의 생활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으나 금광이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국내 금광은 전남 해남의 은산광산, 충북 음성의 무극광산, 경북 봉화의 금정 광산 등 8개 정도가 남아 있으며 대우조선해양의 자회사인 은산광산이 연간 금 215㎏을 생산하며 은산광산에서 채굴되는 금의 양이 국내 생산량의 약 98%를 차지하고 있으니 거의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청양 하면 고추, 구기자 등 특산물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백제시대에 중요한 축을 담당했으며 금을 캐며 꿈을 꾸던 사람들이 살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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