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웃다리

청양 오토캠핑장과 웃다리 농악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단지 경제적인 것만 있어서도 아니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흥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왔다. 기득권에 밀려 하루하루가 힘들던 민초들의 삶도 일제강점기에 억눌려 살던 피지배민의 삶에서도 흥이 있었다. 웃다리 풍물은 경기, 충청 일대의 풍물놀이를 일컬으며 꽹과리의 다채로운 가락이 일품인 음악이다. 특히 세련미가 넘치는 관계로 전문가적인 노련미가 요구되며 끝부분의 짝드름(숫쇠와 암쇠가 주고받는 부분)은 신명의 경지에 도달할 정도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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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한쪽으로만 들어가서 충청웃다리 농악 표지석을 발견하지 못했다. 충청웃다리농악은 충남을 대표하는 무형문화로써 국악, 타악 분야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월해 송순갑 선생이 한평생 연구하고 지켜온 소중한 문화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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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을 포함한 충청지역 일대에서 연회 되는 농악이다. 현재 대전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1호로 등록되어 있다. 농악이 시작된 신대리는 장터인 데다 은산별신제가 열리는 마을이어서 풍물놀이의 전통이 강한 고장이었고 송 선생이 6세 때 두레패의 삼동으로 뽑혀 무동을 하면서 풍물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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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오토캠핑장은 바로 이곳 칠갑산 오토캠핑장과 동강리에 자리한 오토캠핑장이 대표적이다. 둘 다 주변에 큰 산도 없고 시야가 막힌 곳이 없는 곳에 자리한 캠핑장이다. 산이 있는 곳에 있는 캠핑장이 조성된 곳도 좋지만 이렇게 탁 트인 곳에 위치하고 있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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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별신제란 바로 백제의 부흥을 바라는 제사로 이미 청양군과 부여 등에서는 그 문화가 오랜 시간 자리해온 것도 사실이다. 송 선생은 26세 때인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인 민속농악 말살정책 때문에 농악이 자취를 감추게 되자 송 선생은 패의 결성과 운영을 중단하고 충청도 일대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풍물을 지도하러 다니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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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오토캠핑장의 조형물들이다. 농악이란 농업을 생업의 기본으로 삼고 있던 조상들의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으며, 오늘날 농악대의 원초적인 형태로써 춤이 수반되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농악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에서 전해 내려온 민속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 음악의 생성, 발전과 더불어 우리 조상들이 간직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연행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웃다리 농악은 대개 충청과 경기지역의 농악을 일컫는데 구성에 있어서 서로 유사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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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조선문화 특히 민속문화에 관한 조사사업을 통해 무속 종교가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무속신앙은 가장 중요한 탄압 대상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공동체를 형성·유지하는 장치 역할을 해온 마을굿을 철저히 제지했던 것이다. 민족의 혼을 말살시키는데 공동체를 무너트리는 것도 포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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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궁중음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하동 하회탈이나 지역으로 유지되어 내려오던 것들은 마을에서 구전을 통해 내려왔다. 민중들의 소박한 요구를 솔직한 감정과 정서로 단순한 악기와 몸짓, 춤을 행함에 따라 그 리듬을 맞추기 위하여 나무토막 같은 것으로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 농악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굿이라고 했으며 다른 의미로는 제사의 형태로 때론 이렇게 농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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