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속의 백제

아침을 여는 청양으로의 여행

이 땅에서 여러 나라가 존재했었고 우리는 그 역사를 배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학창 시절 때에 외우듯이 접하고 잊지만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만일 역사가 이성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간의 삶이 혼돈과 무질서, 폭력과 기만으로 점철된 아픈 역사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이성이 실현된다." - 헤겔

MG0A7588_resize.JPG

가까운 곳이면서 자주 가는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신라나 고구려보다 백제가 자리한 충청남도에 애정이 더 가는 편이다. 백제의 역사는 예술과 문화,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서 삼국중 가장 이성적인 나라였다는 생각이 든다. 백제의 유물을 보면 그 디테일에서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가 자리했던 곳은 풍요로운 땅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MG0A7598_resize.JPG

삼국중 중국이나 일본에 문화적인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친 나라도 백제라고 볼 수 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는 공주와 부여라는 곳이었기에 청양은 백제의 역사에서 조금은 소외시 되는 경향이 있다. 청양에 자리했던 백제의 역사는 백제문화체험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MG0A7599_resize.JPG

이른 아침 청양 백제문화체험 박물관으로 발길을 해보았다. 아침의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지만 산책을 해보면서 백제의 역사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아는 대상을 대상으로 가능케해준다. 내가 대상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한, 그 대상의 의미는 주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MG0A7601_resize.JPG

청양 속 백제는 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660년 7월, 백제가 망한 뒤 당은 5도 독부를 설치하고 수많은 백제인들을 붙잡아 당으로 끌고 갔는데 한 달도 채 안되어 두시원악(청양), 임존성(대흥) 등에서 정무와 흑치상지 등이 이끄는 백제 부흥군이 조직되어 다시 백제를 일으키려고 했었다.

MG0A7606_resize.JPG

백제문화체험 박물관의 앞에 많이 보이는 나무는 바로 모과나무였다.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모과나무의 향기가 가을의 온도 속에 무르익었다. 과하지도 않지만 그 은은한 향기가 모과의 매력이다.

MG0A7610_resize.JPG
MG0A7612_resize.JPG

청양은 백제 때는 3개 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칠갑산 동쪽으로는 열기현이, 칠갑산 서쪽으로는 고량부리현이, 비봉·화성면에는 사시량현이 있었다. 신라 때는 웅진도독부에 속해서 열기현이 열성현으로, 고량부리현이 청정현으로, 사시량현이 신량현으로 개칭되었다.

MG0A7616_resize.JPG

역사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만 하더라도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었던 국가에서의 역사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안개가 짙게 내려앉아 있어서 멀리까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실적인 것을 인식하려는 인간 정신의 첫 번째 활동은 감각적으로 사물을 확신하려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물을 명확하게 보기 힘든 안개 너머로 태양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결국 명확해지는 시간이 온다.

keyword
이전 08화충청웃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