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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0. 2019

독로국

복원된 거제 사등성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기술한 책의 변진별고(弁辰別考)에서 경상남도 거제도 일대로 비정하였다. 그는 무슨 근거로 거제지역을 독로국이 있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삼국사기를 보고 지리지 거제군조에 “거제군은 문무왕 때 처음으로 상군을 설치하였는데, 바다에 있는 섬이다.”라 하고, “상(裳)은 우리말로 ‘두루기’이고, 음으로 독로와 가깝다.” 하여 거제로 추정한 것이라고 한다.

수없이 오간 길의 안쪽에는 조선시대 방식으로 다시 복원되어 있는 성이 하나 있었다. 최근에 복원했는지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비된 모습이었다. 이곳은 성지로 유지되다가 다시 복원된 곳인데 아주 오래전 변한 12 소국 중 하나라는 변진 독로국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주 오래전에는 부산에서 일본으로 가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난류와 해풍의 영향 때문이었는데 때문에 거제에서 대마도를 향해서 일본 본토를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거제도가 독로(두루)의 이름을 얻고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변한 12개의 토호국이었던 삼한시대였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섬은 옛날에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바다가 빙 둘러 있다고 해서 두루라고 불렀다고 한다. ‘독로’, ‘상군’, ‘거제’가 모두 섬의 지형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거제도의 위쪽의 육지에는 고성에 자리한 고차국, 사천에 자리한 사물국, 마산의 골포국, 창원의 탁순국, 김해의 가락국등 잘 살펴보면 지리와 관련이 깊다. 

지금의 성의 모습은 세종 20년(1438년) 축 성신 도의 규정에 따라 내벽을 계단식으로 축조했다고 한다. 원형 보존 차원에서 구간별 발굴조사된 수법대로 정비 및 복원하였다고 한다. 거제현의 관아가 수월리에서 사등리로 옮겨지면서 성을 쌓기 시작해서 완성하였으며 거제현의 관아를 고현으로 옮길 때까지 거제 읍성으로 사용된 곳이라고 한다. 

성이 모두 복원된 것은 아니지만 거제의 풍광과 잘 어울린다. 원래 성주위에는 폭 20미터의 방어용 도랑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주변으로 논만 눈에 뜨인다. 둘레 986미터, 높이 5미터, 폭 5미터의 규모로 원래 사방에 성문이 있었다.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변진전(弁辰傳)기록에 의하면 삼한시대의 낙동강 유역 진한 12국, 낙동강과 섬진강 사이 변한 12국 등 변진 24개국 가운데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이라는 국명이 등장한다. 독로국이 중국과 교류를 했던 것이다. 

독로국이 있었던 시기에는 왕이 없고 군장이라는 지배자가 있었다. 군장은 청동기 시대에 계급이 분화되면서 등장한 지배자이다. 군장은 부족을 다스리는 정치적 지배자이면서 종교의식을 주관하는 종교적 지배자이기도 했다. 군장이 등장한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면서 강력한 군장이 주변 세력을 통합해 갔고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건국되었다. 부족에서 국가로 나아가기 전의 과정이었지만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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