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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3. 2019

노후설계

문경 잉카 마야 박물관

주변에서 보면 아직도 노후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지인들도 적지 않다. 먼 이야기처럼 보여도 시대는 변하고 어느 순간에 그 시기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는 삶을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특정학교를 졸업하고 모임을 하는 것도 경제적인 여력이 있을 때나 정상적인 모임이 된다. 먹고살기 힘들기 시작하면 모임이란 있을 수 없다. 

지방의 여행지를 다니다가 보면 노후설계를 위해 자신의 인생에서 겪은 경험이나 소장품을 통해 자리 잡은 사람들은 보게 된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옛 문양초등학교에 중남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잉카·마야 박물관은 김 관장이 지난 30여 년간 중남미 대사 시절 잉카·마야 문화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수집한 잉카·마야 시대 소장품을 한 곳에 모은 것이다. 

문경을 다니기 시작한 첫 해에 이곳을 와보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활동량이 많은 분이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자리에 없으실 때가 많다. 

개인적인 공간이면서도 잉카와 마야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접해볼 수 있다. 지인이 그곳까지 다녀온 적이 있는데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갈 엄두가 안 날정도로 먼 곳이었다. 과연 이코노미석을 타고 그곳까지 가는데 버틸 수가 있을까. 잉카라는 이름은 지금의 페루 쿠스코 부근에 있던 종족의 이름으로 13세기부터 16세기 중엽에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지방에 번영했던 잉카 제국의 문명이다. 재래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보듯이 잉카 제국은 에스파냐의 침공으로 1533년에 멸망하긴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균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멸망해버린 것도 있지만 그들의 문화에서 동질성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인디언 문화 같기도 하면서 평화 속에 공존을 추구하는 느낌이 든다. 이곳에 자리한 마야 문명은 기원전 3000년~기원전 200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 문명이다. 마야 문명 중에서 무엇보다도 훌륭한 것은 마야 달력이다.  1년을 365일로 계산한 태양력으로, 오늘날의 것과 매우 비슷하다. 그렇지만 한민족의 절기도 참 묘하게 그 시기가 딱 들어맞는 것을 보면 인간이 생존하는 데 있어서 조상의 지혜는 필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잘 살펴보면 마야의 숫자를 볼 수 있다. 점으로 표시하다가 5부터는 선으로 표시가 된다. 왜 숫자 5를 점과 점이 연결된 선으로 생각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석상의 얼굴 모양으로 숫자를 구분하기도 한다. 

지금도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스페인의 문화도 만나볼 수 있다. 마야와 잉카문명을 멸망시켰기에 그들의 흔적도 그곳에 있다.  에스파냐(Espana) 또는 이베리아(Iberia, 에스파냐의 옛 이름)라고도 불렀던 그 제국은 켈트,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서고트, 무어족 등이 스며들어 살았다. 15세기에 들어와 독립국가를 이룬 스페인은 16세기 초부터 17세기 초 사이에는 세계를 제패하게 된다. 

그림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사회상을 반영하였다. 석기시대에도 그러했고 중세시대에도 사회상을 반영하였다. 예술가들의 자유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패권을 쥔 영국은 19세기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했다. 이때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그림에 표현했고 남자와 여자의 고정된 역할상을 그림에 억지로 주입했다. 

인디언들이 조상신에게 바칠 때 사용하던 제기 '케루'와 야마 털로 짠 다양한 색상의 인디언 젠 통모자 '유추'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를 접해볼 수 있는 잉카. 마야 박물관은 조금은 독특한 박물관이다. 개인적으로는 노후설계를 했던 사람의 인생 발걸음을 다시 되돌아보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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