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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7. 2019

추어탕

빛나되 번쩍이지 않는다.  

빛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번쩍이지 않는 것이 있을까.  이 글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광이불요다. 절제의 미덕을 강조하면서 노자가 도덕경에서 남긴 말이다.  음식에도 그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재료만으로 먹는 제철 생선도 있지만 음식의 상당수는 여러 재료가 합쳐져서 어우러지는 맛이다. 어떤 하나의 맛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다른 맛이 죽는다.  맛의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음식을 잘하는 비법이다. 

음성군에 갔다가 맛있다는 한 추어탕집을 찾았다. 가을이 왔으니 추어탕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이 집을 찾았지만 추어탕의 추는 가을추가 아니라 미꾸라지의 추다.  여름이라면 여름이어서 몸보신하기 위해서 찾고 가을이 왔으니 가을이라서 추어탕을 찾는다. 이 음식점은 가성비가 괜찮은 집니다. 다양한 찬도 괜찮지만 돌솥에 밥이 지어져서 나온다. 

먹음직스러운 흑미가 얹어진 밥에 호박이 살포시 앉아 있고 위에 잣이 뿌려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갓 도정한 쌀로 갓 지은 밥이다. 이천, 여주, 구미, 보령, 당진, 김천 등 맛있다는 지역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불변인 듯하다.

추어탕이 나오고 그 안에 청양고추를 넣고 부추도 담아 보았다. 진득한 추어탕의 맛이 느껴진다.  가을이면 살이 통통하게 올라 단백질이 풍부해진 미꾸라지가 식욕을 돋우고 기운을 보강해주기 때문에 양반집 마님이 사랑채에 있는 서방님께 야식으로 들여보내던 음식이 추어탕이었다. 서문경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금병매에서도 미꾸라지를 정력의 상징으로 그리고 있다. 

국수도 넣고 밥도 말은 후에 식히면서 먹어 본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시간의 개념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해서 보았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으로 탄생에서 죽음까지 아침이 되면 저녁이 되는 시간까지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카이모스는 한 개인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관적이 시간 개념이다. 그냥 흘러가듯이 보내는 크로노스로 살지 자신을 위한 카이모스의 시간으로 살지는 본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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