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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1. 2019

노란 역

아름답게 장식된 장성역

장성역을 처음 보았을 때 이 역이 지금 운영되고 있는 역인가? 아니면 테마로 꾸며진 역인가 생각될 정도로 꽃과 노란색이 가득 넘치는 기차역이었다. 기차역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지만 대도시 기준으로 보면 간이역 정도의 크기와 규모라고 볼 수 있다.  아무렴 어떠한가. 장성을 가면 한 번쯤은 들려볼 만한 여행지로 기억이 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장성역을 보고 있으니 장성군의 인구가 궁금해졌다. 통계자료를 보니 2019년 8월을 기준으로 46,000여 명 정도로 군 단위에서의 평균 정도의 인구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장성군은 읍내로 도시화의 집적도가 있는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성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단언컨대 홍길동과 노란색이 압도적이다. 노란색은 옐로 시티 장성의 황금빛 번영을 상징하고 홍길동은 허균이 자신이 지은 소설 홍길동전을 통해 호민의 대표로 홍길동이란 인물을 형상화했다. 그렇지만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연산군대에 얼자의 신분으로 도적떼의 두령이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존인물이었다고 한다.  

홍길동은 이듬해인 1425년(세종 7년)에 파주가 아니라 전라도 장성현 아곡리 아치실 마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료는 '증보해동이적 해중서생'에 실린 글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장성군으로 불리는 지역에 홍길동 생가가 있고 그 주변으로 홍길동 테마파크가 조성이 되어 있다.  

세종대에 아버지 홍상직이 있었고 홍길동도 그 시대에 태어났다고 한다. 세종의 꿈은 모든 백성이 살기 좋은 세상이었을까. 아니면 훈민정음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세상이었을까. 장성역 옆에는 기차 갤러리가 있는데 우리 한글 먹빛에 스며들다 전시전이 열리고 있었다.  

홍길동에 대한 이야기는 그 이복형 홍일동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정통 관료 가문의 후예였지만 조선의 강력한 신분제도에 따라 비천한 얼자로써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자 조정에 불만을 품고 있던 무리와 유랑민들을 끌어모아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작품을 보니 최근 무소유라는 책은 읽었다는 어떤 이가 기억이 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다.  

허균의 신념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홍길동은 잘 알다시피  길동은 천민의 신분인 얼자(孽子)였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그는 병법과 도술을 익혀 큰 인물이 되고자 했지만 천한 신분 때문에 과거를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등 온갖 설움을 가지며 살았다.  

장성 평화의 소녀상은 장성역 앞에 만들어져 있다. 

장성역의 안쪽으로 들어와 본다. 분위기는 고즈넉한 간이역의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 홍길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소설 속에 홍길동은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 국왕이 되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린다.

지금 이 시점에서 허균의 호민전이 왜 생각날까.  호민전에서는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라며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위한 것이므로 만일 임금과 지배계층이 백성을 업신여기고 착취하면 궁예나 견훤 같은 호민이 나와 선동함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야기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백성으로 향한다는 것과 지금 시대에 국민으로 향한다는 것의 의미는 맥락상에서는 같을 것이다. 장성군은 홍길동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살기 좋은 노란색 세상이 매일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이 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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