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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4. 2019

공활(空豁)하다.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한 아이가 들판을 걸어가고 있다. 그 소년은 선생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네 질문이 수업 분위기를 망친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가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자신이 가야 갈길을 찾기 위해 방황을 했다. 공활해 보이는 하늘과 이 세상에서 인재란 하나로 규정되는 것인가.  사람은 제각기 가능성이 있는데 그 가능성을 하나의 잣대로 잰다면 어떻게 될까. 이 사회는 그런 하나의 잣대만을 가지고 인재의 기준을 판단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앞서 말한 방황하는 소년은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이다.  

하늘이 맑은 날일수록 책 읽기가 너무 좋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금산의 요광리는 추부면에 속해 있는 곳으로 충남에서 오래된 은행나무가 자리한 보석사와 함께 충남을 대표하는 노거수가 자리한 곳이다.  요광리 은행나무는 나무높이 20m, 둘레 12.4m, 가지 퍼짐은 동쪽 4m, 서쪽 2.7m, 남쪽 5m, 북쪽 13m, 면적은 165㎡이다. 


추부면은 해주오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해주오씨의 오유종이 무오사화 때 충남 진산으로 귀양 간 후로 자손들이 금산군 추부면에 세거 하게 된 것이다.  오 씨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 중국 양자강 부근의 주나라 제후국이었던 오(吳)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은행나무 옆에 자리한 정자는 500년 전 이 마을에 살던 오 씨(吳氏)의 선조가 전라감사로 있을 때 이곳에 정자를 짓고 행정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정자다. 뒤에 정자는 없어지고 주위도 논밭으로 변하였으나 근래에 행정헌(杏亭軒)이라는 정자를 복원하였다. 

전국적으로 보면 노거수 중에 은행나무가 가장 많은 듯하다.  은행나무는 지구의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존재이기도 하다.  조금 늦추어 잡아도 공룡시대인 쥐라기(1억 3천5백~1억 8천만 년 전) 이전부터 지구 상에 삶의 터전을 잡아온 은행나무는 태어날 당시는 지금과 같은 잎 모양이 아니고, 손바닥을 펼친 것처럼 여러 개로 갈라져 있었다. 차츰 진화가 되면서 갈라진 잎들이 합쳐져 오늘날의 부채꼴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직접 가서 보면 은행나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남쪽 가지는 1905년 무렵 큰 바람이 불어 부러졌는데, 길이 30m 정도로서 이 가지로 켠 판자의 넓이는 3명이 누워 잘 수 있을 정도였으며, 이 가지로 3년 동안 밥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북동쪽 가지는 1925년 무렵에 부러졌는데, 길이가 40m 정도 되어 37개의 목관을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은행나무는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다른 나무가 갖지 못하는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특별함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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