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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7. 2019

질서를 세우다.

가을 영천의 임고서원

국가나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이 있고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에 대한 길은 도덕을 따른다.  고려시대 말과 조선시대에 법이 있었지만 사회질서는 성리학이라는 명분론적 질서를 합리화하는 사상체계를 따랐다. 그 성리학의 시조는 영천 임고서원의 정몽주다. 자연·인간·사회가 모두 위계질서를 갖는 것이며 기에 의해 구성되는 우주 만물은 차별성·등급성을 가진다는 것이 성리학이다. 

온도가 갑자기 내려가면서 완연한 가을 날씨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임고서원은 여러 번 와서 그런지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정몽주를 알기 위해서 왔다가 지금은 그냥 임고서원을 하나의 정원이자 배움터처럼 여기고 찾아온다.  

선죽교, 송탑비, 서원, 조용대, 용연, 전망대, 은행나무 등으로 갈 수 있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것처럼 성리학은 사회 속에서 관료제적 통치질서, 신분계급적 사회질서, 가부장제적·종법 제적 가족질서를 포함하는 명분론적 질서의 이정표였다.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성리학은 기득권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되며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게 된다.  

재현된 선죽교가 있고 그 아래로 물이 흘러가도록 파두었다.  시작의 힘은 신성하다고 한다. 사물의 뜻은 다른 사물과 비교함으로써 분명해진다. 우주 대자연의 현상은 모두 시작점에서 나온다. 성리학에서  인간은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보존하는 도덕 실천을 통해 본연지성에 따르는 생활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침 일찍 임고서원을 찾아와서 그런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맑고 구름은 있다. 임고서원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변하기 전에 와서 약간은 아쉽지만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보인다.  

고려 말기 이래의 정치·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성리학의 교육과 보급이 행해졌는데 그 중심에 정몽주가 있었다.   정치는 군주를 비롯한 지배층의 도덕적 실천과 함께 인민에 대한 도덕적 교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지만 고려의 권문세가는 바뀌지 않았다.  

문이 닫혀 있었는데 관리하시는 분이 마침 정리를 하고 문을 열어주셨다. 아침인데 일찍 오셨다고 말을 건네시길래 아침 일찍 임고서원이 보고 싶었다고 말을 했다. 솔직히 그냥 아침잠이 없었을 뿐이었다.  

당시 성리학의 초기 고려에 들어온 경서는 주자집주 (朱子集註)뿐이었는데 정몽주는 그것을 유창하게 강론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뛰어났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많이 의심했을 정도였다.  당시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던 이색(李穡)은 정몽주가 이치를 논평한 것은 모두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 하여 그를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했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몽주가 후대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향교와 서원에 모셔진 것은 그가 사회질서를 대변하는 성리학을 안착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안쪽으로 걸어서 들어가 본다. 만물이 다 그렇기니와 인간은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을 우리는 안정이라 부른다. 일정한 틀을 갖추었다는 것은 사람은 틀에 적응하며 살아가는데 이것이 무너지면 방황에 이르게 된다.  사회가 올바르게 나아가야 방향을 찾지 못하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과거에서 배움이 필요한 때가 있다. 지금 한국은 가을의 임고서원에서 도덕적 실천이 무엇인지 배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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