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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元曉大師)

원효가 창건한 통영의 안정사

깨달았다는 의미의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와 함께 동양에서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원효대사가 가장 잘 알려졌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인 εὕρηκα heúrēka에서 출발한 유레카는 나는 그것을 찾았다는 의미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바로 물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원효대사는 물을 마시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면 물이라는 것은 참 묘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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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의 한 언덕에는 신문왕 당시 원효가 지었다는 금당(金堂) 자리가 남아있기도 한 원효대사의 흔적은 통영에도 있다. 통영의 안정사는 654년(태종 무열왕 1)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였다. 안정사의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나한전·칠성각·응향각(凝香閣)·만세루·탐진당·광화문·범종루·천왕문·요사채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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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사의 일주문을 돌아서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원효는 인간이 값어치 있기 위해서는 본연의 맑은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던 사람이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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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항상 산사로 가는 길에는 물소리와 맑은 공기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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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부처와 중생을 둘로 보지 않았는데 오히려 “무릇 중생의 마음은 원융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니, 태연하기가 허공과 같고 잠잠하기가 오히려 바다와 같으므로 평등하여 차별상(差別相)이 없다.”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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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원효의 깨달음은 항상 곱씹어봐도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해답은 내부에 있다. 그것을 밖에서만 찾으려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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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6년(숙종 12)에 창건되어 1841년(헌종 7)에 중수된 누각인 만세루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앞에 보이는 나한전은 1626년에 원민 대사가 중건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서 석가모니불과 16 나한상 등 23구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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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일이 있을 때 깃발을 달아놓는 당간지주가 낮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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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찰의 규모를 가지기도 했다는 안정사는 그냥 오래된 고찰의 모습만 간직하고 있었다. 태종 무열왕의 둘째 딸 요석공주(瑤石公主)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원효는 실계(失戒)한 뒤 스스로 소성 거사(小性居士)·복성 거사(卜性居士)라고 칭하고 속인 행세를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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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아직도 진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 길을 찾아가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안다. 때로는 연약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확인받으려고 하는 부족함이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도래하여 신심에 찬 환희로운 고대 불사 문화 도량을 지향한다는 안정사에서 평온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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