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Oct 20. 2019

원효대사 (元曉大師)

원효가 창건한 통영의 안정사

깨달았다는 의미의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와 함께 동양에서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원효대사가 가장 잘 알려졌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인 εὕρηκα heúrēka에서 출발한 유레카는 나는 그것을 찾았다는 의미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바로 물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원효대사는 물을 마시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면 물이라는 것은 참 묘한 존재다.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의 한 언덕에는 신문왕 당시 원효가 지었다는 금당(金堂) 자리가 남아있기도 한 원효대사의 흔적은 통영에도 있다. 통영의 안정사는 654년(태종 무열왕 1)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였다. 안정사의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나한전·칠성각·응향각(凝香閣)·만세루·탐진당·광화문·범종루·천왕문·요사채 등이 남아 있다.  

안정사의 일주문을 돌아서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원효는 인간이 값어치 있기 위해서는 본연의 맑은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던 사람이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 원효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항상 산사로 가는 길에는 물소리와 맑은 공기가 함께한다. 

원효는 부처와 중생을 둘로 보지 않았는데 오히려 “무릇 중생의 마음은 원융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니, 태연하기가 허공과 같고 잠잠하기가 오히려 바다와 같으므로 평등하여 차별상(差別相)이 없다.”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모든 길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원효의 깨달음은 항상 곱씹어봐도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해답은 내부에 있다. 그것을 밖에서만 찾으려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1686년(숙종 12)에 창건되어 1841년(헌종 7)에 중수된 누각인 만세루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앞에 보이는 나한전은 1626년에 원민 대사가 중건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서 석가모니불과 16 나한상 등 23구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사찰에 일이 있을 때 깃발을 달아놓는 당간지주가 낮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대사찰의 규모를 가지기도 했다는 안정사는 그냥 오래된 고찰의 모습만 간직하고 있었다.  태종 무열왕의 둘째 딸 요석공주(瑤石公主)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은 원효는 실계(失戒)한 뒤 스스로 소성 거사(小性居士)·복성 거사(卜性居士)라고 칭하고 속인 행세를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진리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아직도 진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 길을 찾아가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안다. 때로는 연약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확인받으려고 하는 부족함이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도래하여 신심에 찬 환희로운 고대 불사 문화 도량을 지향한다는 안정사에서 평온함을 느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의 특별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